#13. 계획형 인간의 최후는

차곡차곡 쌓여 버린 실패 더미를 마주하는 일

by 감우


참 이상하다. 계획을 세운다 뒤에 따라오는 말은 대체로 실패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왜 계획 세우기를 멈추지 못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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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씨앗이 마음속에 작은 싹으로 움트기 시작할 무렵부터 어떤 과실이 열릴지를 상상하며 그 과실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한다. 과하거나 덜하지 않도록 알맞은 물을 뿌려 주고, 적당한 햇빛을 공급하고, 가끔은 농약도 치고 영양제도 꽂아주며 관리하는 과정은 까맣게 미뤄둔 채로. 그래서일까. 제대로 된 과실을 맺어 본 경험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왜 나는 늘 저 먼 미래에 시선을 두고 살았던 걸까.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회피인 것일까?


어릴 때부터 경제적인 계획을 세우는 일에 능한 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돈을 참 잘 모았다. 덕분에 돈이 똑 떨어져 고생한 기억은 없으나 그렇다고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세운 계획이란 것들은 전부 이런 식이다. 나름 치밀했던 계획 덕에 최악은 면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최고가 된 것도 아닌, 뭐 그냥 그렇고 그런 것들. 치밀한 계획 덕에 도출된 명백한 결론은 명백한 실패뿐이다. 계획하지 않았더라면 실패할 일도 없었을 실패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스스로를 자발적 실패자의 굴레로 끊임없이 밀어 넣는 꼴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계획형 인간은 대체로 계획이 어긋나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압도되고 만다. 가끔은 정말 숨이 턱 막힐 듯한 압박감에 가슴을 치기도 하고, 갑자기 폭발하는 짜증을 못 이겨 울음이 터질 때도 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과민하게 반응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계획이 틀어졌다고 세상이 무너질 리는 만무하고, 나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은근한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이 과정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그러나 재미있는 포인트는 지금부터다. 길지 않은 인생을 돌아보면 계획대로 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결과만을 놓고 보면 오히려 좋은 쪽으로 풀린 일이 더 많다. 하지만 과정 중에 있을 때의 나는 언제나 실패자였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야, '뭐야, 결국엔 좋은 쪽으로 어긋났던 거잖아?' 하고 조소와 안도가 뒤섞인 웃음을 뱉어내는 일이 잦아졌다.


이제 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기로 했다. 삶의 불확실성에 몸을 맡기고, 순간순간 마주하는 상황에 집중하며, 그 순간에 내릴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여 살고 싶어졌다. 열심히 계획하고 착실히 지켜나가는 것만이 주도적인 삶인 것은 아니다. 가끔은 우연한 기회에, 때론 불행이라고 여겼던 사건으로 인하여,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질 수도 있는 일이다. 어쩌면 삶은 통제할 수 없기에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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