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2일 일요일, 흐림
입춘이 지나고 나니 거짓말처럼 기온이 올라갔다. 기상청은 거짓말을 해도 절기는 웬만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럴 때 가끔, 지구가 아직은 살 만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식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도 빠른 걸음을 조금 걷다 보면 덥다는 느낌이 들 만큼 춥지 않은 날씨였는데 쨍하게 내리쬐는 해님이 안 보이시니 조금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날에는 실제 기온보다 체감 온도가 몇 도 정도 낮게 느껴진다. 요즘은 실외보다 실내가 더 추운 경우가 종종 있다. 간절기의 아이러니다.
남편이 어제 올린 내 글을 읽고 이런 비평을 남겼다.
요즘 대세는 숏폼 콘텐츠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호흡이 긴 콘텐츠 소비하기를 꺼려한다. 이러한 사실이 트렌드 리포트에도 언급되더니,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여기, 명백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내가 있다. 나는 일종의 숏폼 소비 장애를 가지고 있다. 나에게 있어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행위란 일종의 죄악이다.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고, 시보다는 소설을 좋아한다. 이러한 인간이다 보니 나는 말도 길고 글도 길다. 일기에 가장 많이 적는 것이 "말을 줄이자." "간결하게 말하자."이지만 실천이 쉽지 않다. 글조차 그렇다. 쓰다 보면 어느새 너무 구구절절 지루한 글이 탄생하고 만다. 이 점을 고치고 싶으면서도 왠지 그러고 싶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 멋진 것 같지는 않다.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오늘 다 보았다. 관계의 상대성에 대한 묘사가 훌륭한 작품이다. 관계란 철저히 상대적인 속성을 가지기 때문에 나라는 인간은 동일하지만 만나는 상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 포함된 관계에서도 상대성은 여전히 존재하며, 더욱 미묘한 방식으로 우리를 괴롭힌다.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인데, 그래서인지 소설형 인간들이 잔뜩 등장한다. 얼마 전 롱블랙 노트에서 소설형 인간에 대해 묘사한 글을 읽었다. '소설형 인간'이라는 단어 자체를 이곳에서 처음 접했으므로 해당 문장을 소개한다.
"필요한 '행동'을 할 줄 모른 채 생각에 갇혀 고뇌하고 통곡하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을 '소설형 인간'이라고 부른다. 세상의 크나큰 부조리와 폭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이미 정해진 절망 앞에서 움직여보지도 않고 주저앉는 사람, 갖은 논리와 변설로 그 부조리를 너무나 생생하게 설파하는 사람."
_ 롱블랙 {민담형 인간 : 영웅의 시대는 갔다, 민담 속 주인공처럼 살아라} 중에서
솔직히 위 문장에 100% 동의하기는 어렵다. 소설을 사랑하는 한 명의 독자로서 약간은 기분이 나쁘기까지 했다. 애초에 소설이란, 부조리와 폭력 앞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미 정해진 절망 앞에서 움직여 보지도 않고 주저 않는 사람은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형 인간이 보이는 일련의 과정에는 저런 모습들이 분명 존재한다. 내가 생각하는 소설형 인간은 회피형 인간이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까지 도망치다 결국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질 때, 본인조차 알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나며 비로소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이 점진적 서사를 위해 소설형 인간은 일단 회피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인물들은 다분히 소설적이다. 나는 회피형 인간을 좋아하지 않고, 회피형 인간이 되고 싶지도 않으며, 회피형 인간이었던 적도 없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언제나 정면승부'를 가르침 받은 탓이다. 나는 역시 소설가가 될 재목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마지막 회를 보고 내린 나의 결론은? 앞으로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유연석'이라고 말하겠다. 조금 반한 것 같다.
서점의 일요일은 비교적 한가하다. 일단 책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업무가 반으로 줄어든다. 이렇게 한가할 때면 가장 먼저 산처럼 쌓여 있는 반품을 싸고, 미뤄뒀던 청소를 한다. 비질만이 아니라 걸레질까지! 그것까지 다 하고 나면 먼지떨이를 손에 들고 서점을 천천히 돌면서 먼지를 터는 척 다음에 구매할 책을 고른다거나, 평생 볼 일 없을 것 같은 책들을 괜히 한 번 들춰 본다(로스쿨 수험서나 의학 해부 서적 같은). 서점원이 되고 전보다 책을 못 읽고 있는데, 책을 사는 양은 급격히 증가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애정하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곱씹으며 자위한다.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에요.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서점이 한가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동료와 함께 진상 손님 씹기 대잔치를 벌이는 일이다. 서점에서 일하다 보면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 같은 진상들을 매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가끔 우스개로 이런 말을 한다.
"역대급 진상이 동시에 여럿 오는 경우는 없어. 서점에도 진상 보존의 법칙이 존재하는 거지. 다음 사람을 위해 물러나 주는 거야."
진상 이야기를 하자면 또다시 조지 오웰의 <서점의 추억>을 인용할 수밖에 없겠다.
우리 서점에 왔던 사람들 중 다수는 어디에 가도 진상일 부류, 하지만 특별히 서점에 와서 진상을 부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병약자용 도서를 원하는> (매우 흔한 요구 사항이다) 우리 노여사님, 또 1897년도에 자기가 읽었던 무척 멋진 책을 한 권 구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시는 또 다른 노여사님. 그분은 안타깝게도 책 제목이나 저자 이름이나 책 주제가 기억나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책 표지가 빨간색이라는 점은 기억하고 계시리라.
_조지 오웰 <서점의 추억> 4p
우리 서점에도 개떡같이 말하며 책을 요구하는 손님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개떡 같은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곧바로 해당 책을 찾아 줄 때 프로가 된 기분이 든다. 서점에 대한 자료나 책들을 읽다 보면 어느 시대든, 어느 나라든, 진상의 유형은 동일하고, 서점원들의 고충도 일맥상통한다는 얘기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여러 세대를 넘어 이어져 오는 '책'이라는 물성의 마법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