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4일 화요일, 맑음
꿀 같은 휴무였다.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쉴 때 쉬는 삶을 살다 서점원이 되고 보니 남들 일할 때 쉬고 남들 쉴 때 일하는 일이 잦아졌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아침에 눈을 떴더니 갑자기 연차를 낸 남편이 나를 반긴다. 남편 회사 안 가면 그저 좋던 신혼 기간은 이미 지나갔다. 더군다나 몸이 안 좋아서 연차를 낸 터라 눈 뜨자마자 약을 사러 집을 나서야만 했다. 홍대의 약국들은 아침에 문을 열지 않는다. 역 근처까지 걸어가 약을 사다 줬다. 오랜만에 해가 쨍하게 나서 조금 걸었더니 땀이 났다. 봄이 오고 있다.
서점에서 우연히 <잉크, 예뻐서 좋아합니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일하며 짬짬이 반 정도를 읽고 구매는 하지 않았는데 그 짧은 사이에 만년필에 지대한 관심이 생겼다. 아무래도 책을 사야 할 것 같다. (이번달에는 책을 너무 많이 샀는데 말이지...) 만년필 구경하느라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무려 세 개의 펜숍 어플을 다운로드한 뒤, 몽블랑 잉크 한 병과 파이롯트 딥 펜 두 개를 구매했다. 만년필이라고는 3천 원짜리 프레피 만년필밖에 써 보지 않았고, 몇 년 전 캘리그래피를 독학해 보겠다고 샀던 딥펜 세트는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채 결국 버려졌다. 그래도 입문하기엔 가격 부담이 없는 딥펜이 제격이라는 생각에 (살짝) 충동적으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오전을 만년필의 늪에 빠져 보내 버리고 세시쯤이 되어서야 카페로 갔다. 집에 있으면 영 집중이 안 된다. 불렛저널에 그간 밀린 기록들을 채워 넣는 데만 몇 시간을 보냈다. 왜 카페에서는 집중이 잘 되는 걸까?
인간은 망각의 노예이다. 열심히 책을 읽어도 돌아서면 잊는다. 올해부터는 좀 더 착실히 기록을 해 보고자 불렛저널에 완독 컬렉션을 개설했다. 올해 네 번째 책을 완독 했다. <서점의 추억>은 책이라기엔 너무 짧으니 세 권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읽으며 밑줄 친 문장들을 밑줄 노트에 필사한다. 나중에 인용하거나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은 문장들은 대부분 밑줄 친 문장들인데 시간이 지난 뒤에 그 문장만을 다시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방금 다 읽은 책의 밑줄 친 문장을 필사하는 것인데도, 대체 이 문장에 밑줄을 왜 친 건지 이해 안 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다 이유가 있었겠거니 생각하며 필사는 한다. 책에 밑줄을 많이 치며 읽는 편인데, 그래서 남에게 책을 빌려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20대 초반에 쓴 밑줄 노트들을 보면서 어릴 적 일기를 읽는 듯한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있다. 그 노트들은 결국 쓰레기통으로... 지금 이 노트도 언젠가 나를 부끄럽게 할 날이 올까?
현대카드를 열심히 긁고 다니며 모은 M포인트로 롱블랙 6개월 구독권을 구매한 지 95일이 지났다. 매우 만족스럽지만, 오늘처럼 별로 기록할 게 없는 날도 있다. (심지어 노트를 두 개나 읽었는데도 말이지.) 롱블랙 노트를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기록한다. 롱블랙을 구독하고 또 기록하며 깨달은 점 -> 나는 브랜드 스토리 또는 브랜딩 인사이트에 언제나 흥미를 느끼며, 아무리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그것이 단지 개인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면 큰 감흥을 받지 못한다. 그래도 오늘 수면 진단 앱 [슬리] 를 알게 되었다. 약간의 수면 장애가 의심되는 남편에게 추천해 줘야겠다.
"그때 먹었던 그거, 그 맛있었던 거..! 그거 뭐더라..?" 하는 날이 잦아져서 다녀온 식당과 카페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올해 카페 세 곳밖에 안 간 것이 실화인가? 집순이랑 집돌이가 만나 결혼하면 이렇게 된다.
인스타 보면 불렛저널을 엄청 멋들어지게 활용하는 분들이 많던데, 나는 다꾸 같은 것에 재주도 없을뿐더러 검은색 볼펜으로 글자만 쓰는 것조차 매일 밀린 일기 쓰듯 버겁게 쓰기 때문에 꾸미기는 사치이다. 그래도 기록은 좀 더 일찍부터 했으면 좋았을 걸 생각한다. 기록의 중요성을 매일 느끼는 요즘이다.
데일리로그에 매일 해야 할 일을 적어뒀는데 모든 리스트를 완수한 날이 많지 않다. 나는 채찍보다 당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 맘대로 방식을 바꿔 보았다. 선 수행 후 기록 방식이다. 해야 할 일을 적는 게 아니라 오늘 한 일을 적으면 나는 언제나 100% 달성률을 보장할 수 있다. 또한 시간이 지나 다시 보더라도, 하려다가 못한 리스트보다는 그날 실제 했던 활동들에 대한 리스트의 기록이 더 유의미할 거라는 생각이다. 오늘은 휴무인 데다 혼자 카페에 가서 거의 네 시간가량을 있었으므로 꽤 많은 것들을 했다. 이렇게 뿌듯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을! 왜 이제껏 하려다 못한 것들을 보며 좌절했을까. 일단은 이 방식을 유지할 예정.
나에겐 사랑하는 토론메이트들이 있는데, 철학적 질문을 던져두고 저마다의 개소리를 퍼붓는 형태의 토론이 허구한 날 벌어진다. 오늘의 주제는 설렘이었다. 이야기의 발단은 내가 카페에 있던 중,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커플을 통해 시작되었다. 좌석 간 거리가 매우 가까운 편이었는데, 그들은 너무 시끄러웠고, 여자의 말투는 혀가 과도하게 짧아져 있어 신경이 거슬렸다. 내가 불편감을 드러내자 한 친구가 경멸의 감정 속에는 부러움이 숨어 있는 거라고 서두를 열었고, 처음에는 장난처럼 "네가 지금 풋풋함이 필요한가 보다~" 따위의 말을 하다가 결국 "설렘이란 무엇인가?"까지 가고 만 것이다.
최근에 저들(토론메이트)과 만났을 때 '폴리아모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사실 우리의 설렘에 대한 사색은 이때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폴리아모리'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했다는 것 자체가 단일 관계에서 충족감을 얻지 못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것이 그날의 화두였고, 수명은 점점 길어지는데 2-30대에 만난 남녀가 죽을 때까지 서로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을 여전히 이상화하는 것이 맞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 대화 중에 깨달은 사실 하나는, 설렘과 불안이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를 놓고 보더라도,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리는 상태는 설렘의 자리에 불안/공포/두려움 따위의 단어를 대입하더라도 크게 어색함이 없다.
'폴리아모리' 대화 이후 연인 및 부부 관계에 대해 틈날 때마다 생각해 보았는데, 나는 여전히 불륜남녀보다는 백년해로 쪽이 더 판타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설렘보다는 신뢰와 안정감이 더욱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인간은 원래 일부 일처제가 습성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기나긴 불륜의 역사만큼 두터운 것은 불륜에서 비롯된 비극의 역사이다. 설렘을 우선순위에 두면 그것은 사람을 계속 바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설렘과 불안이 유의어라는 가정 하에, 안정감과 설렘은 명백한 상극이다. 둘 다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설레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놈이 그놈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또한 설렘을 쫓는다는 것은 불안을 쫓는 것과 일맥상통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대화도 '설렘이 필요한가'로 시작하여 '설렘이란 무엇인가'로 진행되다 결국 '부부 상담' 이야기로 끝났다는 결론. 아직은 좀 더, 일부일처제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오늘 책과는 거의 담쌓고 사는 남편이 뜬금도 없이 "신경숙 표절이 뭐야?"하고 물었다. 어렴풋이 기억은 나지만 한참 전의 일이라 갑자기 그런 것을 왜 묻냐고 했더니 관련 기사가 오늘 떴다는 것이다. 표절 시비란 언제나 명료하지 않은 구석이 있어 일이 터졌던 당시에도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었는데 몇 년 전 사건이 오늘 왜 다시 수면 위로 올랐을까가 궁금하여 검색을 시작했다. 장강명 작가가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출간하며 그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비판 섞인 언급을 한 것이 오늘 기사가 난 이유였고,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신경숙 작가 표절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기 시작했다(신경숙 표절 사건이라는 제목의 나무 위키도 존재한다). 일단 놀랐던 점은 표절 시비가 불거진 문장들의 유사성이 거의 동일한 문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이라는 점이었고, 둘째는 문단의 폐쇄성이 생각보다 심각하여 썩지 아니할 수 없어 보이는 현실이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해당 문제의 중심에는 출판사 창작과 비평이 포함되어 있는데, 불과 얼마 전 청소년 소설 <아몬드>의 저자인 손원평 작가와도 불미스러운 이슈가 있었던 바, 대체 이 판은 어디서부터 얼마나 썩어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조정래 작가(태백산맥, 한강 등의 저자)는 신 작가의 표절 시비가 불거졌을 당시 해당 사건을 두고
"표절은 자살 행위인 동시에, 그의 작품이 새롭다고 믿고 이를 통해 각자의 인생에서 여러 가지를 구한 독자들의 영혼을 죽이는 타살 행위"
라며 비판하였다고 한다(전문은 나무위키 참고). 나는 위 비판문을 읽으며, 독자로서도 표절 문제는 결코 가벼이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반성하게 되었다. 표절이 작가 입장에서의 자살 행위이듯이, 표절에 대해 알고도 방관하는 일은 독자의 입장에서 자살 행위인 것이다.
신경숙 작가는 집필을 재개하였다. 나는 오늘, 어떠한 이유로든 다시는 그녀의 글을 읽지 않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