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023 Record

남편의 통풍

2023년 2월 15일 수요일, 맑음

by 감우

남편은 몇 년 전 통풍 진단을 받았다. 몇 달간 꼬박꼬박 외래 진료를 다니며 약을 받아 먹었는데, 요산 수치를 낮추는 약을 먹으면 간 수치가 높아졌고, 간 수치 낮추는 약을 먹으면 요산 수치가 다시 오르는 현상의 반복이었다. 어느 날 남편은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나도 그 선택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그래프 장난질 같은 약 처방 치료가 결국 간도 망가트리고 통풍도 고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솔직히 진짜 통풍이 맞는지도 의심스럽다. 남편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을뿐더러, 고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결코 과한 양의 고기를 섭취하지는 않는다. 당시의 진단이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요산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높은 것으로 보아 통풍일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였는데, 이것이 의사들 특유의 화법일 수도 있으나 100% 확신을 가지고 내린 진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심리적 문제가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남편은 이틀째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오늘도 출근하지 못했다. 오늘 아침, 여전히 다리가 아프다는 남편에게 퇴사를 하라고 말했다. 나는 퇴사가 약보다 더 확실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데에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남편이 원하던 대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워낙에 건강 체질을 타고난 편이라 좀처럼 아픈 법이 없는데, 그래서인지 병간호에는 영 잼병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프다'라는 개념에 한해 공감능력이 아주 약간(어쩌면 조금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나는 자주 아픈 사람들을 보면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애석하게도 나의 남편은 몹시 병약한 체질을 타고났다. 중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잔병치레가 많고 기초 체력도 평균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듯하다. 그래서 첫 통증이 발현되었던 어제는 그러게 평소에 운동을 좀 해라 로 시작되는 잔소리를 한껏 늘어놓고는 오후에 카페로 튀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까지 제대로 걷지 못하는 남편을 보니 왠지 좀 불쌍해졌다. 아픈 게 불쌍했다기보다 나 같은 여자를 만났다는 게 불쌍해졌다. 아픈 게 잘못도 아닌데 아플 때마다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아프다는 말에 걱정보다 잔소리를 더 많이 하는 여자를 만나 나에게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거렸던 날도 많을 테다. 오늘따라 얼굴도 왜 그리 핼쑥해 보이던지. 이 불쌍하고 병약한 남자를 혼자 두고 나가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은 지금 내가 필요하다. 서점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결국 나도 출근을 하지 않기로 했다.

결근을 결심한 그 순간, 아침 여섯 시가 넘도록 브런치에 올릴 글(이 아닌 기록)을 쓰느라 밤을 꼴딱 새운 나의 입꼬리가 조금은 올라간 것도 같다.

\ 오늘 밑줄 친 문장들

숀 비텔_<서점 일기>
트레이시 애링턴, 매튜 프레더릭_<광고학교에서 배운 101가지>


\ 오늘 기록

롱블랙 인사이트


\ 인스타도 놀러오세요 (PLZ)

www.instagram.com/edit_gam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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