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5일 토요일
이틀을 푹 쉬고 출근한 토요일. 내가 주말에 출근하는 것을 좋아하게 될 줄이야! 책이 들어오지 않는 것만으로 서점에는 엄청난 여유가 생긴다. 주말은 미뤄뒀던 청소를 하는 날이기도 하고, 쌓여 있는 반품을 몰아 싸는 날이기도 하지만, 꽤 많은 양의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은 <서점 일기>를 읽었다. 서점에서 <서점 일기>를 읽다니, 좀 뻔한 클리셰 같긴 하지만.
일기인 듯 기록인 듯 주제 불분명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서점 일기>였다. 남의 일기를 읽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개인적으로는 꽤 가치 있는 기록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쓰기 습관도 기를 수 있고 말이지.
이 책은 스코틀랜드에서 중고 서점을 하는 서점 주인의 일기인데, 내가 서울 한복판의 서점에서 겪는 에피소드와 소름 끼치게 유사한 점이 많아 더욱 흥미롭다.
어떤 고객이 들어와서 "아동 도서는 어디 있어요?"라고 물어보기에 아동 도서 코너를 가리키며 "저기 저 문을 지나면 있어요"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손님은 내가 가리킨 쪽에서 180도 돌아서더니 방금 몇 초 전에 서점에 들어오기 위해 통과한 정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느 쪽이요, 저 문이요?"
<서점 일기>_123p
실제로 이런 일은 너무 흔해서 얘깃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내가 직접 그 책이 있는 곳까지 데리고 가서 서가를 짚어 주며 "여기에서 보시면 돼요."라고 말해도, 금세 내 앞으로 다시 돌아와 "책이 어디 있다는 거죠?"라고 묻는 손님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런 손님이 등장했다. 얼마 전에는 손님이 찾는 책이 카운터 바로 아래 서가에 있어 손으로 그쪽을 짚어 주며 "여기에 있어요“라고 했는데, 정말 엉뚱하게도 카운터 위에 있던 파일(주문한 책 목록이 들어 있는)을 집어 들고 가려고 해서 급히 뺏은 일도 있었다.
어떤 손님이 6.50파운드라고 적힌 1876년 판 <다니엘 데론다>를 발견하고는 계산대로 가져와서 "이거 가격이 얼마나 하나요?" 하고 물었다. 나는 갑자기 '7.50파운드일 걸요'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서점 일기>_260p
심지어 우리 서점은 새 책만을 취급하고, 뒤표지에 가격이 떡하니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가격이 맞는 거죠?"라거나 "이거 얼마에 파나요?"라고 묻는 손님은 어떤 기대 심리를 가지고 질문을 하는 걸까. 며칠 전에는 특정 책을 찾아 달라고 하더니만 "중고가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묻는 손님도 봤다. 중고가로 사려면 중고 서점에 가면 될 텐데 말이다. 요즘은 온라인 서점에서도 중고책 판매를 하고 있는데 왜 일반 서점에 와서 중고가로 사는 법을 묻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마존이 고객에게는 이득인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서는 책 판매자에게 부과되는 가혹한 조건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 출판사는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명작가들과 일하지 않으려 하고 이제는 그 둘 사이의 중개인마저 사라졌다. (...) 이는 독립 책방에만 압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와 작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창의성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더 슬픈 진실은, 아무리 작가와 출판사가 결속하여 아마존에 맞서더라도 결국 출판업계는 대대적인 파멸을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서점 일기>_163p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얼마 전 동료와 유사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 같은 개인 서점이든, 교보나 영풍 같은 대형 서점이든 서점원에 대한 처우는 크게 다르지 않고, 더 규모가 작은 독립 서점의 경우는 직원을 둘 여유도 없는 곳이 허다하다. 그렇다면 대체 책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누구냐 하는 것이 그날 대화의 주제였다. 사장도 남는 게 없다고 우는 소리를 하고, 직원들은 이 돈 받고 어떻게 사냐고 우는 소리를 하고, 작가들은 글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힘들다고 울고, 출판사는 사람들이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울고, 손님들은 책이 너무 비싸다고 운다. 책을 둘러싼 저마다의 불만만 가득하고 책으로 돈 좀 번다고 자신 있게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책은 왜 이리 많이 나오는 건지..! 요즘은 독립 출판이다 뭐다 개인까지 책을 내지 않는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권씩 신간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 의문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진짜 알면 알수록 기묘한 시장이 아닐 수 없다.
체스나 바둑처럼 지능형 대전 게임을 제대로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나 하고 있는데, 오늘 여유가 생긴 김에 체스 책을 찾아보았다. 기본 룰을 숙지했지만, 응용으로 들어가니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우연히 꺼낸 책이 운명처럼 파본이어서 반품 자리에 두고 새 책을 주문했다. 퀸스 갬빗을 다시 봐야겠다.
#1. <크리스퍼 드래곤 레시피>
이제 유전자 가위를 통해 장애는 없고 지능은 높은 아이를 제조해 낼 날이 머지않았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하여 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쓰인 책인데 아주 가볍게 들춰 본 정도라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나 설정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 용을 훈련시키는 법, 용이 있는 세상에서 필요한 법(law) 등 꽤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는 듯하다. 다음 달 구매 책 리스트 최상단에 올라 있다.
#2. <세상 최고의 엄마>
각종 동물들의 엄마 유형을 도감 형식으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몰랐던 정보를 알 수 있고 내용도 흥미롭다. 해마는 알을 수컷에게 전부 떠넘기고 떠난다고 하고, 하마는 물속에서 새끼를 낳으며 한 번에 한 마리만 낳는다고 한다. 제목만 보고 엄마가 주제인 감동 스토리의 그림책을 상상했으나 내용이 반전인 것도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
심야 영화를 봤다. [앤트맨 앤 와스트 퀀텀매니아]
10분 전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길래 사진을 찍었다. 관을 잘못 찾았나 싶어 다시 나가서 확인까지 했는데 영화 상영 5분 전쯤부터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화는 재미있었지만,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면 더 재미있을 수도(오히려 반대려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이 생각났는데,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책을 보고 연습하는 캘리그래피보다 기본적인 글씨 쓰기가 더 어렵다. 글씨도 정말 연습하면 잘 쓸 수 있을까?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오늘은 에밀리 디킨슨의 '소박하게 더듬거리는 말로'를 필사했다. 이쯤 되면 필사라기보다는 그냥 글씨 연습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