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_(서점원 일기)
이제 신학기의 열기가 조금씩 식어가고 있다. 장기 근속자인 M은 신학기가 너무 싱겁게 끝나 버린 것 같아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코로나 이전인 18년도 3월과 비교해 보니 매출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2018년도에도 온라인 서점이 꽤나 당연하던 시기였는데 말이다.
서점에서 일하며 매일 느끼는 거지만, 책이란 물건은 세상에 나와 여러 사람의 손을 타기엔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다. 어제 주문해 오늘 받은 새 책의 상태가 어떤지 직접 보지 않는다면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다. 오직 소비자이자 독자이기만 했던 시절에도 나는 띠지나 커버에 부정적이었는데, 서점에서 일하고부터는 거의 증오 수준으로 부정적 감정이 상승했다. 대부분의 파손은 띠지나 커버에서부터 시작된다. 들어올 때부터 커버가 찢어져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제일 혐오하는 류는 기름종이같이 얇고 매트하고 불투명한 재질의 커버를 사용한 경우이다. 이런 책들은 보통 이미 꼬질꼬질해진 채로 입고되는데, 손님들이 그 책을 한 번 집어 들 때마다 커버 끝은 갈라지고 마모되며, 거뭇거뭇한 손때마저 고스란히 남는다. 신간으로 그런 책이 들어왔을 때 서점원들은 모여서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출판사가 책 팔 생각이 없네."
서점에 깔려 있는 모든 책과 기타 잡화들은 전부 판매 상품임에도, 손님들은 결코 조심하는 법이 없다. 책을 계산대에 가져왔을 때는 너도나도 깨끗한 책이 없냐고 묻거나 새 책을 찾으면서 말이다. 우리 서점은 대형 서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중형 서점 정도는 너끈히 되는 규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책은 (웬만한 베스트셀러가 아니고서야) 단 한 권의 재고만을 가지고 판매한다. 그러니 대부분의 경우는 당신이 들고 있는 (조금 더럽고 약간은 구겨진) 바로 그 책이 우리 서점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새 책'이라는 말이다. 오늘은 너무 거대해서 한 손으로 들기도 어려운 행정법 책이 또! 커버가 찢어진 채로 들어왔다. 어제 받은 책의 커버가 찢어져 와서 재주문한 것인데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서점에는 커버가 찢어진 책 두 권과 그나마 멀쩡한 책 한 권이 남게 되었다. 반품을 보낼 수도 있지만 반품을 하고 다시 받는 책이 멀쩡하리란 보장이 없으므로 이것도 답은 아니다. 그 책은 심지어 양장이었고, 커버를 벗기면 완전히 똑같은 디자인의 표지가 존재한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의미도 없는 커버를 씌워 내보내는지 모를 일이다. 마감 직전 그 책을 찾는 손님이 (마침) 왔길래 5%를 할인받고 커버가 찢어진 책을 사거나 정가에 멀쩡한 책을 사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도 좋다고 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5% 할인을 선택했다. 5% 할인을 해 주고 나면 서점의 이익은 책 정가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서점은 순전히 박리다매 전략으로 '최대한 많은 책을 보유하고, 최대한 많이 팔아, 티끌 모아 태산으로 많이 남기자' 주의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익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지만 작은 규모의 독립 서점들은 망하지 않는 게 이상한 수준이다. 책이란 물건은 수지타산 측면에서 최악의 상품이 확실하다.
사람들은 책이 너무 비싸다고 노래를 부르고, 서점에 와서도 할인을 해 주냐고 너무나 당당하게 묻고, 직원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커버 사진만 찍은 뒤 "인터넷에서 사자"라고 말하며 돌아간다. 이 모든 게 어쩌면 전부 책의 연약한 특성 탓인지 모른다. 절대적 가격이 얼마이건 간에, 소비자가 느끼기에 '이 값에 이 정도면 아깝지 않은데?'라고 느끼면 그 상품은 무조건 팔린다. 그러나 책은, 그 책의 가격이 얼마이건 간에 '이 값에 이 정도면 너무 아까운데?'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마법에 걸려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잠깐 멈춰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부분이 있다. 우리가 책을 사는 이유는 상품의 모양이 예쁘거나, 상품의 기능이 좋거나, 상품의 퀄리티가 좋아서가 아니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찢기거나 구겨지는 이 종이 뭉치는 사실 누군가의 창조성의 발현체이며, 누군가의 지식의 집합이고, 누군가의 고뇌의 결과이다. 사실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인테리어 소품 고르는 것과 동일한 기준을 대입하여 소비하려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마지막으로 서점원으로서 한 마디 하자면, 오프라인 서점은 그 어디에서도 책을 할인해서 판매하지 않는다(일단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도서 정가제로 인해 책은 정가 판매를 기본으로 하며, 최대 10% 할인 및 5% 적립을 허용해 준다. 온라인 서점이 그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나 당신도 알다시피 오프라인 서점은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규모의 책만을 판매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을뿐더러 공간 유지에 대한 비용이 추가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온라인 서점에서는 절대 제공할 수 없는, 당신의 것이 아닌 실물의 책을 읽고 싶은 만큼 읽고 심지어 함부로 대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가! 우리 서점은 할인은 없지만 적립을 최대 10%까지 해 주는데 이것도 사실은 엄청난 혜택이다. 영풍문고는 정가에 팔면서 적립은 2%였다고!
기본적으로 세상 모든 물건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저렴하다. 이유는 전부 동일하다. 나는 오프라인 서점들이 무작정 온라인 서점을 비난하고, 그들 때문에 서점이 망한다고 탓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가격을 비교하여 구매할 권리가 있고, 본인이 편리한 구매 방식을 선택할 자격이 있다. 그들에게 우리가 곧 망하게 생겼으니 불쌍히 여기시어 우리에게로 와서 지갑을 열어주시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오프라인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소비자들도 인지해야 한다. 그 독자적 가치에 값이 매겨지는 것일 뿐이다. 그것을 무시하려는 것은 자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 오늘은 읽은 책이 없어 글머리는 생략한다.
- 드라마 '테드 라소'를 시즌 2까지 다 보았다. 다음 주 수요일에 새로운 시즌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