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서점의 책은 마술처럼 사라졌다 마법처럼 다시 나타나곤 한다. 가장 신비로운 순간은 수십 번 찾아봤던 바로 그 자리에 얌전히 놓여 있는 책을 발견할 때다. M과 나는 우리가 한눈을 팔 때 책들이 돌아다니는 게 분명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마치 토이스토리처럼. 오늘도 무려 세 권의 책을 그런 식으로 찾았다.
서점의 손님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자주 털어놓긴 했지만 사실 대부분의 손님은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 열에 여덟은 착한 손님들인데 그중에서도 둘셋 정도는 너무 과한 친절 탓에 도리어 내가 부담스러워지기도 한다. 열에 둘 정도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나를 상처 주지는 못한다. 완전한 타인은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은 언제나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바로 그들이다. 그러니 매일 낯선 사람들을 손님으로 맞이하는 일은 스트레스보다는 즐거움이 더 크다.
그래도 정말 무례한 손님들이 있기 마련인데,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서점원으로 일하며 만난 가장 최악의 손님은 일명 '법진상'으로 통했던 한 여성이었다. 계단을 올라오는 그 순간부터 이미 짜증을 내며 올라오는데 정말 서점을 방문할 때마다 매!번! 그런 식이 었다. 부정적 감정은 전이가 빨라서 그녀를 보기만 해도 나까지 짜증이 나곤 했다.
그녀는 언제나 짜증을 덕지덕지 붙인 채로 쿵쾅거리며 카운터로 직행했는데, 다짜고짜 책 제목을 여러 개 읊어대다 되묻기라도 하는 날엔 "그것도 몰라요?" 하며 가자미 눈을 뜨고 언성을 높이곤 했다. 사장과 사장의 아내를 포함해 서점의 모든 직원에게 언성을 높여대던 그녀를 두고, 사장은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사장이 더 이상 우리 서점을 방문하지 말라는 내용증명을 내밀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이 서점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두 번 사랑했다가는 사람도 죽일 여자 같으니라고.
M과 나는 그녀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한다.
"우리나라 법조계의 미래가 암울하네요."
아무튼 사장이 내용증명을 내민 그날 이후로 그녀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는데, 오래된 직원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모아 말한다.
"그 여자는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
이제 굳이 반복하여 말하지 않아도 내가 띠지 혐오자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어제 구매한 책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에도 어김없이 띠지가 딸려 왔는데, 뭔가 해 볼만한 게 없을까 고민한다 연필깍지를 만들기로 했다. 연필깍지를 여러 개 샀었지만 내 마음속 부동의 1위는 (아마 10년도 더 됐을) 홍대 놀이터 앞 플리마켓에서 산 업싸이클 연필깍지(사진 속 알록달록한 것)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인데 저 조그만 것을 잃어버리지도 않았다니까!
띠지는 대부분 코팅 종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염에 강하고 질긴 것이 장점이다. 연필깍지 만들기에는 딱이라는 말! 구멍을 너무 촘촘히 뚫어버린 탓에 누더기꼴이 되었지만 다시 만든다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깍지를 만들면서 제일 귀찮았던 작업은 초를 이용해 자수 실을 코팅하는 일이었다.
띠지를 죄다 연필깍지로 만든 다음, 나중에 내 가게가 생기면 상품으로 내놓을까 생각 중이다. 과연 사는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