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023 Record

2023년 3월 15일 수요일

출근

by 감우

매거진 [2023 Record], 그러니까 지금 여기 쓰고 있는 글들의 의미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모든 콘텐츠에는 기획이 담겨 있어야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여기 쓰고 있는 것들은 기획 같은 거창한 것은 전혀 들어 있지 않고 주제도 불분명한 글들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써 갈기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공개적인 곳에 올릴 만한 글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쓰는 것을 멈추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제까지의 나와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 보고 싶다. 어쩌면 다른 선택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니까.


제목을 정하지 않기로 한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점점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다행인 건가?) 그래도 아직까지 그 결정을 바꿀 생각은 없다. 요즘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가장 좋은 것 하나를 골라내는 작업이다. 밑줄 친 문장 중에 가장 좋은 것 하나, 필사한 시 중 가장 좋은 문장 하나,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은 책 하나, 시청한 영상 콘텐츠 중 가장 좋은 것 하나, 오늘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던 대사 하나.

여러 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때는 굉장히 쉬울 것 같지만, 막상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하나를 선택하는 훈련이 좀 더 경지에 오르고 나면, 이곳의 글에도 제목을 붙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루의 일들 중 가장 좋았던 것 하나를 주제로 잡고 완성도 있는 글을 써낼 수 있을지도. 아무튼 아직까지는 다른 것은 다 제쳐 두고, 매일 써내는 것만으로도 나를 칭찬해 주기로 했다.


서점에서 일하다 보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사라진다. 세상에는 이미 책이 너무 많고,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팔리지도 않을 책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온다. 소비자가 없는 상품은 가치가 없다. 결국은 지구를 병들게 할 쓰레기 중 하나가 된다는 소리다. 나는 팔릴 만한 글을 쓸 자신이 없고, 그러니 쓰는 일로 밥을 벌어먹겠다는 생각은 접는 것이 옳다는 결론이다. 그래도 쓰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인 줄 착각했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나는 지금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지만, 그래도 쓰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오늘은 직원이 부족한 관계로 저녁 시간에 1층 근무를 했다. 하루종일 서점에 있어도 다른 층의 책들을 찬찬히 살펴볼 기회는 거의 없다. 다른 층에서 일을 하게 되면 다른 서점에서 일을 하는 것처럼 새로운 기분이 된다. 손님이 없을 때마다 책구경을 하다가 결국 또 1층 책 한 권을 사들고 돌아왔다. 풍문으로만 듣던 <스토너>가 그것이다. 오늘 1층 직원과 신간 정리를 하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1층) : "이 책은 안 팔릴 것 같은데..."

(나) : "안 팔릴 것 같은 책이 한두 권이라야 말이죠."

서점에서 일하다 보면 팔릴 것 같은 책과 안 팔릴 것 같은 책을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의외의 결과는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띠지 연필깍지를 제대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서점에는 버려지는 띠지가 많다. 손님들이 함부로 꺼내 읽고 멋대로 쑤셔 박아 둔 책들의 너덜너덜해진 띠지를, 하루에도 몇 개씩 쓰레기통에 구겨 넣는다. 이제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대신 집으로 가져올 생각이다.



#오늘 서점에서

- 비닐 패킹된 도서를 뜯어서! 본 뒤, 비닐을 그대로 서가에 쑤셔 박고 튄 손님이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현장 검거는 실패했다. 패킹된 비닐은 뜯은 것만으로도 용서하기 어려운데, 심지어 표지를 자국이 남도록 구겨놓고 갔다. 제발... 기본 에티켓은 지킵시다..!

700596951.433694.JPG 오늘 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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