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토마시와 사비나가 중산모자의 모티프를 서로 나눠 가졌듯)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오늘도 서점에는 할인을 요구하는 손님들이 여럿 있었지만 짜증은 나지 않았다. 어제 이곳에 글을 썼던 것이 도움이 된 듯하다. 그래도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상품은 같은 상품이라 하더라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가격이 다르며, 사실상 대부분의 물건들은 책 보다 훨씬 더 큰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 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가격 차이가 최대 10%로 비교적 근소하고, 굳이 이곳저곳 최저가 비교를 해 볼 것도 없이 어디에서나 할인받을 수 있는 최대치는 10%로 동일하다. 대부분의 책(단행본 기준)은 평균 16,000원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최대 할인을 받는다고 해봤자 평균 1,600원의 가격 차이가 난다는 소리다. 그런데 대체 어떠한 심리적 기저가 원인이 되어, 책 앞에서만 유독! 1,600원이 아까워 미치려고 하는 걸까. 서점에 방문해서 책을 집어 들었다가 온라인 서점의 가격을 확인하고 다시 내려놓는 손님들은 왜 본인들의 발품 비용과 소모된 시간의 비용은 고려하지 않는 걸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련의 노동까지 포함되었으나 소득 없이 허비된 시간의 가치가 1,600원보다는 확. 실. 히 더 크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서점에서는 문구 판매를 겸하는데, 문구의 가격도 무조건 온라인이 더 저렴하다. 심지어 책 보다 더 큰 차이로. 그런데 문구를 사면서 할인을 해 주냐거나, "인터넷에서는 더 싸던데"라고 말하는 손님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책이란 대체 뭘까. 사람들은 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소비자가 생각하는 책이라는 상품의 가치는 어느 정도여야 합당하다고 느낄까.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은, 정말이지 순수한 호기심이 발동하려 한다.
오늘 반품을 싸다가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라는 아동책을 잠깐 들춰 보았는데, 그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철학은 생각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그저 놀라움과 호기심을 잃지 않는 거라고.
그러니까 나는 지금 철학을 하고 있는 거라고! 서점에서 일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매일 놀랍고 매일 궁금하다니까?
내 안에 있는 이야기들이 자꾸만 내 마음을 두드릴 때, 혹시 써야만 하는 운명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 전 노트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써야만 하기 때문에 써야 한다고. 내 안에는 이야기가 있다고. 그것은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와는 관계가 없는 거라고. 나는 써야만 할 운명이라고. 그것을 거부하려 해선 안 된다고."
그러다 문득 아니 에르노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경험한 것만을 쓴다는 작가의 신조는 자칫 편협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상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녀의 책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 앞에서 그녀는 발가벗은 채로 기꺼이 알몸을 드러낸다. 경험한 것만을 쓴다는 것은 그런 일인 것이다. 나에게 그럴 용기가 있었다면,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내 마음을 두드리는 이야기들은 전부 나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요즘 내 머릿속은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빈틈없이 꽉 차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든다. 머릿속에 공백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52P
내 악보는 지금 어디쯤에 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