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사비나에게 있어 진리 속에서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실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오늘 서점에서 이런 전화를 받았다.
"문학이 뭐예요?"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거대 담론을 업무 중 수화기 너머의 이름 모를 상대와 나누게 될 줄이야! 기가 찰 노릇이다.
요는 이러했다.
(목소리만으로 짐작해 보건대) 40대 중반 가량의 여성은 (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어떤 선생에게로부터 다음 수업 시간에 문학 책을 한 권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녀는 서점에 전화를 걸어 일단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한 뒤, 베스트 문학 도서 리스트를 요구했다. 그 전화를 받은 서점원(나)은 선생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고 반문하였다. 그녀는, 그런 것은 모르겠고 그냥 제일 잘 나가는 문학 책이 뭔지나 알려달라고 말했다. 서점원은 주위를 대충 둘러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아버지의 해방 일지>의 제목을 말했다. 책의 가격은 15,000원이었다. 그녀는 (서점원은 분명 순위 같은 것을 말한 적이 없음에도) 베스트 1위는 됐고, 한 3~4위 정도의 더 저렴한 책의 제목을 말하라는 요구를 해 왔다. 서점원은 이렇게 응수했다. "그런 건 모르겠고, 그런 식의 도움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녀는 자못 비장한 투로 이렇게 말했다. "됐고, 그냥 내가 직접 찾아가겠소." 그녀는 오늘의 서점 영업이 종료될 때까지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영원히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연히 집어든 책 속의 문장이 가슴속에 품고 있던 질문의 응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나를 미치게 한다. 단전 밑에서 묵직한 떨림이 끌어올라 기어이 두 뺨의 솜털까지 세워 올린다. 불안과 배반의 서사가 나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서사의 불안에 전이되어 내 심장은 끊임없이 진동하고, 나는 그것을 설렘으로 착각한다.
내가 오랜 시간 그토록 찾아 헤맸던 '진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응답이다. 신기루를 쫓아 사막을 내달린다. 무지개를 쫓아 칠흑 같은 바닷속을 망설임도 없이 뛰어든다. 영영 가질 수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을 향해.
이 책을 처음 펼쳐 들었을 때엔 분명,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한참을 밀어 두고 있다 금요일 출근길에 문득, 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별 생각도 없이 출근 가방에 책을 밀어 넣었다. 첫 장을 펼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황홀함이 나를 덮친다. 첫 장을 펼쳤을 때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아껴 읽고 싶은 마음과 한 호흡에 몽땅 읽어 치우고 싶은 욕구가 시소를 탄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88p_3부 이해하지 못한 말들, 진리 속에서 살기中 188p
가장 은밀한 순간에, 가장 진실과 가까워진다.
-진리 속에서 살기- 에 쓰인 모든 문장이 나의 세계를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