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애교란 무엇인가? 딱히 그 실현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지만 성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애교란 성교가 보장되지 않는 약속이다.*
서점원이 되고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직업에 대한 나의 인식이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기가 차는 월급을 받아 들고, 나는 함부로 이곳의 사람들을 판단했다. 나는 그들이 사회적 패배자들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그들과 나를 분리시켰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단지 사업 준비의 일환일 뿐, 생계 수단인 것은 아니라고. 고로 나는 패배자가 아니라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이곳의 일과 이곳의 사람들이 좋아졌다. 수개월 전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다고, 차별은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나는 위선자였다. 바로 내가 차별을 가하는 가해자였던 것이다.
서점의 사람들은 볼수록 단단하고 건강하며, 언제나 당당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직장 동료와 이렇게 편안하고 유쾌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처음 경험했다. 이제 나는 그들 중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한 사람들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정도를 걸어온 자들이다. 다만, 그들만이 인정받아 마땅한 것은 아니다. 정도에서 벗어난 이들을 폐기처분하고, 정도에 올라선 이들만을 모아놓는다고 멋진 신세계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이야기들은 탈선한 자들에 의해 탄생된다.
어제의 글머리를 열었던 사비나의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얼마 전 남편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매일 '진짜' 타령을 해대면서, 인간극장 같이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는 좋아하지 않더라."
남편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더불어 생각했다. 나는 왜 에세이보다는 소설을, 다큐멘터리보다는 드라마를 더 사랑하는 걸까. '진짜'를 추구한다고 말하면서 왜 '가짜'만을 쫓아 떠도는 걸까. 그리고 오늘, 사비나의 문장을 생각하다 문득, 그에 대한 답이 어떤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나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허구의 방패 뒤에 숨겨놓은 진리가 '진짜'에 더 가깝다고 믿었던 것이다. 진리란 허구의 세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짜 세상에 진짜인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33p_4부 영혼과 육체
애교에 대한 기가 막힌 묘사. 이 소름 끼치는 적확성에 감탄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