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023 Record

2023년 3월 21일 화요일

출근

by 감우
그는 자신이 어떤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는 일을 했고 그것이 아름답다 생각했다. 그는 내면적 "es muss sein!"에 의해 인도되지 않은 직업에 종사하며 일단 일을 끝내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사람들(그때까지 항상 동정했던 사람들)의 행복을 이해했다.*


오늘 서점은 평화로웠다. 봄이 온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죽음이 난무하던 겨울은 가고 생의 증거인 봄이 도래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축배를 들고 싶을 뿐, 책에는 관심이 없다. 서점 안의 공기는 여전히 서늘하다.


오늘 점심시간의 대화 주제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었는데, 나는 그 책을 읽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장미의 이름>을 읽었으면서도, 반드시 읽어 보라고 추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게 흥미로운 점이다. 인물이 너무 많아 새로운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앞으로 돌아가 확인을 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들만 실컷 들려줬다. 그 외에도 독서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한 첫 책에 대한 이야기, 흠뻑 빠져들었다 완전히 돌아서게 된 작가 이야기들을 공유했다.


나에게 첫 책으로 기억되는 것은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다. 아마도 초등학교 4-5학년쯤, 친구에게 빌려 읽은 책이었는데, 어떤 신세계가 열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었다. 그 이후로 <제인 에어>를 다시 읽은 적은 없기 때문에 지금은 대략적인 줄거리조차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책 속으로 빠져들었던 그때의 감정만큼은 선명하다. 지금 다시 읽는다면 어떤 감상을 얻게 될까. 조만간 한번 읽어 봐야겠다.




내일은 드디어, 이번달 휴무 중 처음으로! 아무런 스케줄 없이 온전히 쉬는 날이다. 안락한 소파 의자가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홀짝이며 책이나 실컷 읽을 생각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다 끝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둘 중 어느 책부터 읽어야 할지가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어제부터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일단 책을 책장에서 꺼내 책상 위로 옮겨 두었다.


하지만 그전에 일단 이불 빨래부터 끝내야 하고... 우리나라는 없지만 그래도 WBC 결승전은 보고 싶은데....


약속이 있는 휴무날보다, 혼자만의 시간이 허락된 휴무날이 어쩐지 더 바쁜 것 같다. 나는 오직, 혼자만의 시간 안에서만 쉼을 얻을 수 있다. 그 외의 모든 일들은 (그 시간을 무척이나 즐겁게 보냈다 할지라도) 전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내일은 나의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는 3월의 첫날인 것이다.


남편이 만든 토끼 인형. 글과는 상관없지만 올릴 사진이 없으니까 이거라도...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24p_5부, 가벼움과 무거움 중中

어제 직업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오늘 이런 문장을 읽게 되었다면,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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