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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Dec 22. 2016

디자이너 남편과 산다는 것 3

그래, 다시 한번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을 구하기로 마음먹자마자 나는 일을 구했다. 태어나 처음 해 본 홀서빙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걱정보다는 재미있었다. 시급이 낮긴 했지만 둘이 벌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일단 일을 시작하고 보니 신랑이 예상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이 일 저 일 시도해보았으나 두세 번 가고 나면 못하겠다고 주저앉았다. 근성 하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신랑이었는데, 일단 시작만 하면 잘 해낼 줄 알았던 내 기대는 착각이었다. 그래, 그럼 당신이 가장 잘 하는 일을 해 보자. 늘 자기 브랜드를 가지는 것이 꿈이었던 신랑이었던지라, 액세서리 사업을 해보고 싶어 하던 신랑이었던지라, 나는 핸드메이드 주얼리를 만들어보라고 권유했다. 호주는 패션 쪽으로 한국보다 살짝 뒤처져 있어 코리안 패션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눈대중으로도 단가가 뻔히 보이는 옷을 고가에 판매하고 있음에도 인기가 좋았다. 우리는 소량의 옷과 액세서리 부자재를 한껏 떼왔다. 일단은 가진 돈이 있으니 투자라 생각하자. 그렇게 우리는 신랑의 퇴직금을 야금야금 까먹으며 다시 꿈을 꾸었다. 프리마켓을 신청하고, 내가 일하러 나간 동안 신랑은 액세서리를 만들었다. 인스타 인기 해시태그들을 검색하며 팔로워를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인스타 스타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했으며, 부푼 꿈을 안고 나간 첫 번째 프리마켓은 처참했다. 신랑이 밤을 새우며 자료조사, 디자인, 제작까지를 맡아 해왔던 우리의 아가들은 모두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애석하게도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괜찮은 물건을 헐값에 사고자 몰려온 손님들에게는 10불, 20불도 굉장히 큰 금액이라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전의를 상실한 신랑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져 갔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불 꺼진 방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신랑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가, 우리가 이 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그러는 사이 우리가 가져왔던 돈은 이미 바닥이 나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는 더 이상 혼자 벌어서는 생활을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었고, 신랑은 이 곳에선 일을 못하겠다고 하니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 돌아가자. 호주로 온 지 꼭 3개월이 되던 날에 귀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돌아오는 날 아침 신랑과 나가 집 주변을 산책하며 우리는 긴 이야기를 나눴고, 많은 사진을 남겼다. 신랑의 퇴직금을 한 푼도 남김없이 다 털어먹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겨우겨우 월세방 구하고 나면 당장 생활비도 없을 상황인데도 우리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할 긴 여정 중 한 챕터가 이렇게 지나가는거야~ 멜버른 챕터라고 들어는 봤나? 하며 까르르 서로를 보며 웃고는 다시 다음 챕터를 향해 힘겹게 책장을 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희망찼던 모험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끝이 났지만, 그래, 다시 한번 시작하는 마음으로.

PS: 호주에서 얻어 온 가장 큰 교훈이라면 신랑이 사업한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자! 이거 하나만으로도 꽤 큰 수확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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