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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Dec 23. 2016

세 번째 신혼집

서울살이 고단해도, 웃어요 우리.

 호주에 가 새롭게 만난 모든 이들은 한국에서 어디 사냐고 먼저 묻는다.

서울 살아요 하면 서울이 고향이냐고 묻는데, 아니요 그건 아니구요, 의정부에서 태어났고, 분당에서 자랐으며 지금은 서울 삽니다 하면 하나같이 서울 사람이라는 거네 하고 만다. 대부분 수도권 외 지역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하곤 하는데 아니 자기네들은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이라 안 하고 부산사람입니다 대구사람입니다 광주사람입니다 하면서 왜 수도권은 싸잡아 서울이 되는 걸까 자못 짜증스럽기도 했다. 특별히 상관은 없지만 사실상 신랑을 만나기 전까진 한 번도 서울특별시에 거주해 본 적은 없는지라 거짓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찜찜하다. 물론 나의 신랑도 고향이 서울은 아니다. 그렇게 두 타향 사람들이 서울에서 만나, 서울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우리 이야기의 시작이다.


 나는 대부분 신도시에서 살았는데 사실 크게 보면 의정부, 분당, 서울로 말하지만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퍽 이사를 자주 다녔다. 의정부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인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며, 초등학교 2학년 때 경기도 광주로 이사해 분당으로 학교를 다녔고, 분당신도시에서 몇 년을 살다 고등학교 입학 무렵 용인신도시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대학까지 다니다 파주의 운정신도시로 이사한 것이 내 서울살이 전 마지막 거주지였다. 대체로 신도시는 교통이 편리하고, 도로가 넓고 잘 형성되어 있으며, 주변으로는 가까운 거리 내에 대형마트부터 문화생활공간까지 전부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편리하고 쾌적하며, 조용한 거주환경에 익숙해 있었다. 아버지는 큰 집을 늘 갈망하셨으므로 우리는 대체로 퍽 큰 집에 살았었다. 신랑을 만나 결혼 전 신랑의 자취방으로 이사를 들어온 것이 나의 첫 독립이었고, 나의 첫 서울 살이었으며, 나의 첫 원룸살이가 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게 우리의 첫 신혼집이다.


 첫 번째 신혼집은 무척 협소해 내가 사용하던 퀸사이즈 침대를 들여놓으니 꽉 차 버렸으나 우리는 그 집에 많은 애정을 쏟았다. 손수 페인트칠을 하고, 작고 아담한 가구들을 사 구색을 맞추고, 디자인 전공자들 답게 동대문시장을 누비며 손수 커튼과 인테리어 소품들을 만들었다. 아주 작고, 가끔은 바퀴벌레가 나와 난리판을 치곤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아늑한 집이었다. 바로 옆 집에 주인집 노부부가 사셨는데 김장철엔 김치를 갖다 주시고, 젊은 애들 둘이 사는데 뭘 해 먹겠느냐며 밑반찬 등을 챙겨다 주시기도 하시는, 요즈음엔 느껴볼 수 없는 이웃의 정이 느껴지는 집이었다. 시세보다 월세도 제법 저렴해 우리는 그 집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나 이건 지금 와 생각해보면이라는 전제가 붙었을 때의 이야기이고, 당시에는 세면대도 없고, 현관도 없는 그 집에서 늘 다음 집을 꿈꿨었다. 신랑에게 나는 다음에 이사 가면 세면대만 있어도 정말 행복할 것 같아 하고 말하곤 했다.

우리의 첫 번째 신혼집


 두 번째 집은 우리가 결혼을 하면서 둘이 함께 계약한 첫 집으로 이 또한 신혼집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우리는 보증금을 조금 올리고, 월세도 상향 조정해 좀 더 넓은 집을 꿈꾸며 집을 보러 다녔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서울 중에서도 집값이 비싼 편에 속하는 동네였는데 어찌 됐건 약간 무리해서 계획한 월세 정도로도 괜찮은 집은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눈에 좋은 건 남의 눈에도 좋고, 비싼 건 비싼 값을, 싼 건 싼 값을 한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와도 같아서 우리는 예상보다도 조금 오버되는 월세의 집을 계약했다. 원룸인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약 두배 가량이 더 커졌고, 부엌이 완전히 분리되어있어 생선도 구워 먹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세면대가 있었다. 호수 당 한 자리씩 주차장이 배정되어 있어 차가 없는 우리는 주차장을 빌려주며 렌트비를 벌었다. 큰돈은 아니었으나 매달 들어오는 고정 수입은 큰 보템이 되었다. 오빠 우리 이제 세면대도 있어! 우리 이제 현관도 있고! 번호키도 있네!! 정말 좋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집은 우리에겐 과분하리만치 안락하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꽤나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주차장 렌트비가 나왔으니까! 그러나 그 집의 가장 큰 문제는 반려동물이 불가한 집이었다는 사실. 계약 전에 알긴 했지만 부동산의 속삭임과 우리의 욕심으로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입주했으니 노심초사 누가 볼 새라 동물병원 데려가는 일조차 엄청난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음 집은 반려동물 안된다는 집은 절대 안 들어갈 거야! 수시로 신랑과 다짐하며 그럼에도 우리는 자알 지냈다. 아마 덜컥 호주로 떠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그 집에서 살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집에 맞게 다시 산 가구들과, 결혼선물로 받은 소파까지 얼마 써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남의 손에 넘겨질 줄이야. 그렇게 두 번째 신혼집과 이별을 고했다.   

소파 위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던 두 번째 집


 대부분의 집기와 가구들을 다 버리고, 돌아오면 미니멀 라이프를 살자고 다짐하며 떠난 호주를 3개월 만에 뒤로하고 돌아와 보니 우리는 돈도 없고, 직장도 없고, 가진 것도 하나 없는 미니멀 그 자체였다.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집을 구하러 거리로 나갔는데, 우리가 살던 동네 집값이 비싼 줄 알았더니 다 그만큼은 비싸고, 그나마도 교통 좋고 대형마트 가까웠던 전 동네보다 못한 환경이 대부분. 그렇게 우리는 세 번째 신혼집을 위해 서울 거리를 헤맸다.

  이제 이게 진짜 신혼집인 거야, 신혼집인데 그래도 투룸은 돼야 되지 않겠어?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우습다. 짐이라고는 호주에 가져갔던 캐리어 네 개와 옷가지들, 책꾸러미가 전부이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넓은 집을 찾아 헤맸다. 옵션도 없는 집들을. 돈도 없는데. 직장도 없는 주제에. 세면대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던 그 마음을 잊은 채로. 그렇게 우리는 집을 구했다. 투룸으로. 우리가 살던 첫 집에 비하면 월세가 약 1.5배는 더 되는 집으로. 집은 참 좋다. 정말 신혼집 다운 신혼집이랄까. 작은 거실이 있고, 큰 방 하나와 중간 사이즈 정도의 방하나, 베란다가 두 개나 되고 세면대도 있고, 현관도 있고, 싱크대도 넓은 집. 빛도 잘 들고 외풍도 없어 겨울에도 춥지 않은 집. 빨래 건조대가 달려있어 지저분하게 방 안에 빨래를 널지 않아도 되는 집. 반려동물도 당당히 허락받은 집. 그러나 완벽한 집은 없다. 벽지는 너무 지저분하고, 화장실엔 곰팡이가 가득하고, 화장실 문은 다 썩어있고, 곳곳에 개미퇴치 약이 붙어있는 걸 보니 개미도 나오는 듯하고. 벌이도 없는데 월세도 선불이라 가진 돈 탈탈 털어 용달비에, 중개수수료에, 보증금에, 월세까지 치르고 보니 통장 잔고는 텅텅 비었는데. 둘 다 손가락 빨아도 죽지는 않겠으나 당장 나가야 할 돈이 있고, 다음 달 돌아올 월세 날은 또 어떻게 치루나 고민하며 둘러보니 집이 너무 넓어 채울 일이 아득하다. 세탁기가 없어 빨래도 못하고, 냉장고가 없어 장도 못 보고, 옷장이 없어 쌓여있는 옷을 걸지도 못한다. 구석구석 신랑과 함께 쓸고 닦으며 문득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오빠 생각나? 우리 구의동 첫 집 말이야. 그 집이 지금 우리 집 안방만 했어 그치? 근데도 잘 살았었는데. 우리 되게 재밌게 잘 지냈었는데 그치? 그때는 세면대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더니 그때 바라던 걸 다 가졌는데 왜 마음이 편하지를 않냐..


 지금은 내가 태어나 겪는 가장 큰 경제적 고비다. 왜 이렇게 큰 집을 찾아다녔나 무색하게 텅텅 비었던 집은 그래도 이제 냉장고도 오고, 세탁기도 오고, 책장도 오고, 헹거도 와서 퍽 집 같은 모양새를 갖췄다. 페인트칠도 하고 곰팡이도 약을 발라 없앴더니 제법 깔끔해졌다. 그러나 다음 달 카드값이며, 월세를 생각하면 캄캄하다. 가정경제가 힘들어도 늘 돈을 모으던 습관으로 내 주머니 비는 날은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돈이 딱 떨어져 보니 아무 대책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무리해서 이 집을 얻은 게 문득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도 언젠가는 '지금 와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는데'의 순간이 될 수도 있으므로, 현재에 최선을 다해봐야겠지 나를 다독인다. 그리고 이 순간을 절대 잊지 않기를 나와 약속한다. 작은 것에도 행복할 줄 아는 나를 잃지 않기를. 지금 이 어려움을 기억하며 욕심부리는 삶은 살지 않기를. 그러면 팍팍한 서울살이에도 웃을 일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우리 집 거실의 풍경. 아마도 마지막 신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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