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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 늦깎이 입시과외를 받던 때의 일이다. 아마 이 때부터 쓰는 일이 가장 어려워졌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그녀 앞에만 서면 늙은 대추보다 더 쪼그라들어 왜 이런 거지같은 글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매 시간 변명해야만 했다.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 일이란 때때로 얼굴이 화끈거리고 수시로 나에게 실망해야하는 그런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나는 그 시간이 무척이나 유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의 후배가 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그녀와의 관계를 좀더 유지했으면 좋았을 뻔 했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녀는 자주 내 글이 급하다고 지적했고, 더 자주 너무 친절하다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글이란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끌고갈 수 있는 글이야. 왜 다 설명해주려 하니. 설명하지마. 조금씩 보여주기만 해."
변명을 해 보자면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었다. 내 이야기를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속시원히 설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강박, 상대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을 들어야만 하는 집착. 이것은 내가 가진 일종의 병이었다. 나를 거쳐간 몇 안되는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나에게 했던 이야기는
"너는 미안하면 미안하다 한마디만 하면 될걸 뭘 자꾸 미안하기는 한데냐."
그럼 나는 매번 똑같이 대답하곤 했는데 "내가 바람을 폈어, 사기를 쳤어. 미안하기는 한데 내 입장도 있다고. 무조건 미안하기만 한 건 아니라고."
당시엔 그들이 답답해 어쩔 줄 몰랐었는데 지금와 돌이켜보면 참 정이 똑똑 떨어졌을만도 하다. 나의 입장을 완벽히 피력하기 위해(사실은 싸움에 지지 않기 위해) 적확한 단어를 찾아 몇날 며칠 할 말을 썼다 지우는 여자친구라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이런 나를 만나 그 몇 안되는 남자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자괴감을 느끼거나, 고래고래 악을 쓰거나, 핸드폰을 부쉈다.
이런 내게 그녀는 침묵하라, 애매하게 말하라 했으니 그 일이 쉬울리 만무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침묵하는 일, 기다리는 일, 인내심을 갖는 일, 애매하게 말하는 일, 여지를 남기는 일.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왜 이리도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성급한 사람인걸까. 이런 내가 글을 써도 될까, 글을 쓸 수 있을까. 한번씩 그런 생각이 든다. 예전에 쓰던 노트를 찾아냈는데 그곳에서 이런 메모를 발견했다.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신랑은 나보다 훨씬 문학적인 사람이다. 그는 내가 아는 한 침묵하고, 애매하게 말하는 것을 가장 잘 하는 사람이다.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있으면서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아 여전히 나로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낸다.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속으로 우는탓에 쉽사리 호흡이 가빠진다. 가끔씩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이때다 싶어 확 달겨들면 바로 입을 닫고 뒷걸음질치고만다. 그럼 또다시 그의 이야기는 기약없는 다음 이시간으로... 그가 작가를 꿈꿨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겠다고 때때로 생각하면서 문득 불안해진다. 그 또한 나로인해 눈물을 흘리거나, 자괴감을 느끼거나, 고래고래 악을 쓰거나, 핸드폰을 부숴버리거나, 어쩌면 그 모든 것을 해버릴까봐. 그렇게 나를 지나갔던 몇 안되는 남자들처럼 나를 지나쳐버릴까봐.
그와 나의 중간즈음 어딘가에서 우리가 만나는 날, 나는 다시 작가를 꿈꿔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