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023 Record

2023년 3월 24일 금요일

출근

by 감우

오늘은 혼자 근무하는 금요일! M과 함께 일하는 날은 쉬지 않고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즐거움이 있지만, 혼자 일하는 것은 또 그 나름대로 고요한 여유로움이 있다. 요즘은 부쩍 서점이 한가해져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거의 다 읽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으니 모든 내용이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느껴진다는 게 약간의 문제라면 문제랄까?


나름대로 흥미로운 소설이고, 한국에서도 해리포터 같은 웰메이드 판타지물이 나오기를 언제나 기다리며 응원하는 바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단 꿈을 파는 가상의 세계가 책 속의 묘사만으로는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고, 서사가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방식이 아닌 각각의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병렬식 구조라, 판타지의 세계로 완전히 빠져드는 데에 한계가 있다. 또 하나! 밑줄을 치면서까지 곱씹을 만한 문장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꽤 많은 분량의 책을 읽고도 글머리를 열 문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자면서까지 꿈을 사러 꿈 백화점을 돌아다니고, 꿈이 마음에 안 든다고 민원 신고까지 하러 다니려면 피곤해서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는 점..! 살짝 아동에서 청소년 책의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볍게 시간 보내기에는 나쁘지 않은 책이다.


꿈은 언제나 신비로운 구석이 있어서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을 사서 읽기도 했는데, 그 책은 4분의 1 가량을 읽다가 책장으로 들어가 지금껏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참 꿈에 관심을 깊게 두던 시기, 그러니까 <꿈의 분석> 같은 책을 사 나르던 시기에는 꿈 일기도 썼더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읽어 보면 그저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 글들이 대부분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꿈 일기 쓰기를 중단했다. 그래도 꿈에 대한 경험 중 가장 기묘했던 것 하나를 공유해 봐야겠다. 그 꿈이 시작된 것은 10대 후반이었다. 꿈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놀이공원 입구에서 시작된다. 아주 낡은 놀이기구가 몇 개 있는 폐허 같은 놀이공원을 걷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일 때도 있고, 혼자일 때도 있지만, 마지막엔 항상 혼자 남는다. 그 외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날은 이곳에서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누군가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회전 그네도 타고, 청룡 열차도 타며 나름 즐겁게 보내기도 한다. 꿈속의 하늘은 언제나 잿빛이고, 놀이기구도 잿빛이다. 기둥들은 군데군데 녹슬어 있다. 나는 이 동일한 배경이 나오는 꿈을 20대 중. 후반 정도까지 주기적으로 꿨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놀이공원 입구에서부터 '또 이곳에 왔구나' 생각하며 꿈인 것을 인지한 채로 꿈을 꾼 날도 많다. 잿빛의 놀이공원이 꿈에 나온 날은 언제나 눈을 떴을 때 왠지 모르게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이 꿈 때문에 꿈에 대해 관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더 이상 잿빛 놀이공원 꿈을 꾸지 않게 되었고, 사실상 꿈 자체를 거의 꾸지 않게 되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내 꿈이, 저토록 기묘한 경험이, 아무 의미 없이 그저 꿈 제작자들이 만든 꿈을 사서 꾸는 거라고? 이건 일종의 기만이잖아!


뭐, 아무튼,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오늘내일 중으로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unsplash (dream을 검색하니 이런 사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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