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진짜 나'를 찾겠다는 다짐

그것은 숙명일까, 오만일까

by 감우
어머니의 집을 떠나며, 그녀는 순진하게도 이제 자신이 그녀 삶의 주인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집은 세상 도처에 널려 있었고 어디에서나 그녀의 목덜미를 잡았다. 테레자는 어딜 가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78p_영혼과 육체 中


어린 시절에 부모란 존재는 그 자체로 세계의 전부가 된다. 성장기는 부모의 세계에 온전히 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나, 성인이 되고 나면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길고 긴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부모를 닮기 위해 보내는 시간에 비해 부모를 닮지 않기 위해 보내는 시간은 그 물리적 양이 극단적으로 많으나, 고작 십여 년간 배어든 부모의 흔적은 좀처럼 씻겨 나가지 않는다.


어머니의 모습에서 내가 비칠 때, 나는 어머니에게서 한 걸음씩 멀어진다. 어머니가 나를 보며 너는 나와 같다고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일 때, 나는 어머니가 한 뼘씩 싫어진다. 어머니가 본인의 어머니를 험담할 때, 그러나 그 모습이 본인과 같다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공포를 느낀다. 소녀는 자라 그 어머니가 되고, 소년은 자라 그 아버지가 되는 것일까. 기껏해야 부모보다 좀 더 나은 버전의 형태로 성장하는 것이 고작인 걸까.


오랜 시간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생각하는 나는 누구일까. 타인이 보는 나는 누구일까. '진짜 나'는 대체 누구일까. 답을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이면 언제나, 모래성이 파도에 씻겨 가듯 다시 원점으로 허물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비틀대던 중 글머리의 문장을 만난 것이다. 저 문장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 어쩌면 '진짜 나'를 찾는다는 것은 의미 없는 헛짓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대단히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이런 다짐을 하게 된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한 내 것으로 나를 채워 가겠노라고. 어머니의 종교, 어머니의 사상, 어머니의 말투, 어머니의 표정, 내 것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전부 어머니의 것이었던 것들. 어쩌면 '진짜 나'를 찾는 길의 시작은 어머니를 배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실망을 기꺼이 감수하고 그녀와 다른 길을 선택할 때, 그 길의 끝이 결국은 그녀의 집이라 할지라도 처음 길을 떠났을 때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를 배반하는 긴 여정을 떠나려는 이 순간, 아래 문장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와 가벼움>17p


결국 내가 희구하는 것, 그러니까 '나'를 찾는다는 것은 결국 허상을 쫓는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결국 무엇을 희구해야 하는가를 결코 알지 못하면서도 평생 무언가를 희구하며 살아가는, 영원히 무지개를 쫓는 소년으로 살아갈 숙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숙명이란 것이 언제나 그렇듯, 끝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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