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
퇴사를 하고 지금껏 딱 한 번의 이력서를 넣었다. 면접을 보는데, 사장이 내 이력서를 보더니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 00 씨처럼 큰 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던 분과 잘 맞을지 모르겠어요." 일단 나는 (회사 매각 과정에서 갑자기 대기업이 되긴 했지만) 딱히 큰 회사에 속해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따지고 보면 그다지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했던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그 말을 듣고 '이 사람 참 별로구나' 생각했다. 그가 본인의 직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깊은 대화를 나눠 보지 않아도 알 만했으니까.
나는 첫 면접에서 떨어졌다. 일주일쯤 뒤에 전화가 와서는 "그냥 고졸인 분을 뽑기로 했어요."라는 전혀 할 필요 없는 말을 하며 불합격 소식을 알렸다. 딱히 아쉽거나 하지는 않았고 좀 우습기는 했다. 그리고 약 2주 뒤 사장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전에 뽑았던 분이 일을 못하게 되어서 혹시 아직도 일해 볼 생각이 있다면 나와 줄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나는 나가겠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서점원이 된 스토리이다.
몇 달 전, 현대자동차에서 생산직을 대거 채용한다는 소식과 함께 엄청난 지원자가 몰린다는 뉴스가 연일 이어졌다. 내가 일하는 층에서의 주 판매원은 인적성 교재들이었지만, 우리 서점에서의 현대자동차 생산직 관련 수험서의 판매량은 매우 미비했다. 나는 M에게 약간은 우스개처럼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서점 주변 학교들이 다 좋은 학교들이잖아요. 거기 다니는 애들은 생산직 같은 건 안 하려고 할 걸요?" 그로부터 며칠 뒤, 학생 커플이 서점을 찾았다. 남자가 여자에게 생산직 지원 대란에 대한 소식을 알려 줬다. 여자는 말했다. "자기도 지원했어?" 남자는 말했다. "내가 할 일은 아니지." 그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M과 눈이 마주쳤고, 한동안 우리 둘 사이에서는 "내가 할 일은 아니지."가 유행어처럼 각종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사장은 정말 직원들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취급했다. 서점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장기근속 중인 직원들에 의해 굴러갔고,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단기 근속하는 직원들이 수시로 교체되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나가길 반복했다. 사실은 이 현상만으로도 이곳의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그런데도 사장은 일주일도 못 다니고 그만두는 직원들을 흐린 눈으로 모른 척하며, 채용 공고를 올리기만 하면 지원자가 발생하는 현상에는 필요 이상으로 주목하며, 어차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무나 뽑으면 되지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이 기이한 채용 현장을 목격하며 배운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함부로 단정 짓는다. 학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 몸을 쓰는 일, 단순 노동에 속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노력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봉사 시간을 채우고, 열심히 어학연수를 떠나고, 열심히 인턴쉽에 지원한다. 그런데 열심히 스펙을 쌓아서 들어간 회사에서 하는 일을 곰곰이 돌아보자.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맞긴 한가?
열아홉 살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베이커리, 카페, 옷가게, 백화점, 아이스크림 가게 등등에서 일했는데, 일하는 모든 곳에서 직원 제의를 받았다. 나는 불특정 다수의 손님들을 응대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재미있었다. 나는 제법 잘 팔았고, 단골을 만들 줄도 알았다. 나는 서비스직이 적성에 맞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단 한순간도, 서비스직을 직업으로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직원 제의를 받을 때마다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맞긴 한가?
생각해 보면 어떤 대학을 나오고 어떤 과를 전공했는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어떤 대학 어떤 과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고,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 올가미에 붙들려 산다. 누군가는 학위 콤플렉스 증상을 보이고, 누군가는 학위 프라이드가 병적으로 치솟는다.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의 한 가지 선택을 기준 삼아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나눈다는 점에서 위의 두 증상은 다른 양상을 띠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같다. 거기에 빠져 있는 것은 바로 ‘나’라는 주체다. 내 졸업장과 내 전공이 나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직업의 한계치 말고, 진짜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과정이 빠져 있다.
어떤 의미로든, 인생에서 '내가 할 일은 아니지'라는 문장을 지워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어차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한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되니까
끝없는 우주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별을 포기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