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023 Record

2023년 3월 27일 월요일

출근

by 감우

봄이 온 줄 알고 벚꽃은 만개했는데 어쩐지 날은 점점 더 쌀쌀해지고 있다. 어제는 곱게 차려입고 남편과 나들이를 나갔는데, 너무 얇게 입고 나간 탓에 홍대 밤거리를 오들오들 떨며 돌아다니다 결국 커피 한 잔도 못 마시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언 몸을 녹이려다 그만..? 잠이 들었다는 결론!


홍대 거리가 내 집 앞마당이 된 지도 벌써 7년이 되었다. 홍대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 에너제틱한 활기가 살아 있다. 메인 스트릿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대명사격으로 변모하였지만, 구석구석 숨은 골목 사이사이로 젊음과 예술의 정취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언젠간 서울을 벗어나야지, 조만간 서울을 떠나야지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이 동네에 완전히 뿌리내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오늘 서점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손님 한 분이 서점으로 전화를 걸어 생화학 전공도서 문의를 했고, 표지를 찍어서 사진을 보내주면 확인 후 계좌이체로 결제를 할 테니 책은 택배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그러니까 전화를 건 손님은 학부형이었고, 그분의 아드님이 책의 주인이 될 제목이었던 것이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전달을 해 주길래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을 소릴. 그냥 그 아들놈 전화번호를 달라고 해요. 내가 전화해서 해결할 테니까."


아무튼 나는 앞표지와 뒤표지 사진을 찍어 학부형님께 전송을 해 드렸고, M은 참지 않고 그분께 다시 전화를 걸어 방문 수령할 것을 권유했다. 귀하신 아드님의 집과 우리 서점의 거리는 1k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고, 택배를 보내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택배비 4,000원이 추가로 붙는 데다가 내일 모레나 받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대체 이런 복잡한 프로세스로 책을 구매하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았던 것이다. M과의 통화를 마친 어머님은 직접 방문이 가능한지 한번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니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와서는 "그 책이 이미 있다네요. 주문은 취소할게요."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 아드님은 굴지의 명문대생이었는데, 뭔가 좀 우습기도 하고 약간은 씁쓸하기도 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너는 공부만 해. 나머지는 엄마가 다 해 줄 테니까."

라는 말은 생각보다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이 세상은 공부 외에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문제가 첩첩산중으로 쌓여 있으니 말이다. 자립에도 때가 있어서, 어느 기점이 지나고 나면 영영 스스로 서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사건이 있은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기업 인적성 책 문의 전화가 왔는데, 우리 서점은 기본적으로 인적성 도서 예약을 받지 않고 있지만, 30분 안에 온다길래 그럼 한 시간 동안만 맡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약 30분 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녀의 어머니가 서점에 등장했다.

서점에서 일을 하고부터 이 말을 부쩍 자주 한다.


"엄마인 게 죄다 죄."


벚꽃은 어쩜 이렇게 매년 봐도 매년 예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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