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 시 니 말 맞음

내가 뭐라고.

by 감우

오늘은 썼다 지우기만 30분째다.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 얘기는 많은데 딱히 글로 쓸 가치는 없는 것들뿐이다. 그래도 월요 에세이는 쓰기로 했으니 뭐라도 써야겠다 싶어 타자를 치고는 있다.


처음에는 '자기 계발서의 폭력성'이라는 제목으로 뭔가를 써 보려 했다. 이 제목은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맴돌던 문장이기도 하다. 어느 서점에 가나 가장 좋은 자리는 자기 계발서들의 차지다. 동기부여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지극히 보편적이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어떤 루틴 혹은 시도들이 인생의 비기라도 되는 양 포장되는 것이 문득 우습다가도 이내 섬뜩해진다. 자기 계발서의 내용들이란 대체로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살이 빠진다는 식의 당연한 소리들의 나열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소리들을 지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끔은 자기 계발서가 독자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기보다는 패배감을 자극시키는 수단처럼 느껴진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십 분 명상을 안 하면 패배자처럼 느껴지고, 매일 일기를 쓰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 같고, 매일 산책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창작하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나를 노출시키는 것이 폭력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 맞는 속도로, 나에게 맞는 생활 리듬을 찾아, 나에게 맞는 길을 택하는 데에 방해가 될 뿐이다. 나는 나를 지키는 데에 자기 계발서가 결코 이로운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린 뒤로 의식적으로 자기 계발서를 피해 다닌다. 그래서 각 잡고 자기 계발서 모독을 좀 하려 했는데 포기했다. 글로 쓸 가치가 없다. 내가 뭐라고.


두 번째로는 며칠 전 방문한 네일숍 욕을 좀 하고 싶었다. 긴 시간 동안 여러 네일숍들을 전전했지만 이렇게 불쾌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억지로 끌려와서 죽지 못해 일하는 듯한 태도로 화가 잔뜩 난 표정을 하고 앉은 아무개와 한 시간가량 마주 보고 있어야 하는 경험은 정말이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리뷰에 욕을 한 바가지 써 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다시 안 가면 그만이지 굳이 뭐 하러.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다. 아무런 근거는 없지만 그저 내 직관에 따라 말해 보자면, 4차 산업의 키는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옮겨 갈 것 같다. 웬만한 일은 기계가 대신해 주는 세상에서, 대부분의 것들은 온라인에서 보다 싼 값에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익숙해진 세상에서, 물성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과 사람이 하는 서비스의 가치는 갈수록 높아질 테니까. 어느 정도는 천대시되던 서비스직이 머지않아 매우 가치로운 전문직으로 인정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글로 쓸 가치는 없다. 내가 뭐라고.


오늘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내가 뭐라고'로 좁혀진다. 나는 뭐가 아니라서 당신에게 내 생각을 진리로 각인시킬 자신은 없다. 그래도 나 하나쯤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내깔리는 대로 살 생각이다. '내가 뭐라고' 정신과 '네가 뭐라고' 정신으로 무장하면 우리 모두 싸움 없는 세상에서 웃으며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웬만해서는 댓글 같은 것을 쓰지 않는 편이지만 댓글 구경은 종종 하는데, 대체로 난장인 익명의 혼돈 속에서 처음으로 아주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반박 시 니 말 맞음." 나는 이 문장이 평화주의자의 구호가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오늘의 결론.


"반박 시 니 말 맞음"

딱히 내용도 의미도 없는 지루한 글을 여기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무해한 고양이 사진을 선물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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