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우리의 이야기
월요 에세이는 약 1시간 동안 쓴 글을 바로 올리는 일종의 작문 라이브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문득 떠오른 생각이나 오늘 유독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채널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월요일을 맞이하고 보니 내가 좀 오만했지 싶다. 솔직히 오늘은 정말 쓸 말이 없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앉으면 뭐라도 나오는다는 사실이다. 이건 정말 팩트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손톱 거스러미를 뜯으며 시간을 죽이다 보면 은근슬쩍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난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요즘 쓰고 있는 글에 대한 것이다. 이곳에 올리는 글이 아닌, 나만의 은밀한 글짓기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내 남편은 지금 우울이라는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다지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오래전부터 약간은 짐작해 온 일이었다. 남편 본인은 꽤나 충격을 받았던 것 같지만 일단 나는 아니었다. 남편이 병원에 다닌 지 6개월쯤 됐으려나?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몇 달간 약을 먹었다.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매번 다른 약을 타오는데, 매번 새로운 부작용이 새롭게 등장한다. 어느 때는 너무 잠을 많이 자고, 어느 때는 너무 잠을 적게 자고, 어느 때는 극심한 무기력증에 허우적대기도 한다. 의사는 '우울증' 이라거나 '불안증' 같은 어떤 병명을 확언하지 않고 그저 갈 때마다 '우울 지수가 평균보다 이만큼 높습니다' 라거나 '불안 지수가 지난주보다 이만큼 낮아졌습니다' 따위의 말로 진단을 내린다. 그러니까 이 과정은 전반적으로 모호함 투성이다.
그래도 우리는 대체로 보통의 일상을 산다. 매일 웃고 때론 울기도 하고 가끔은 화도 내는 보통의 일상을 산다. 다만, 그 모든 순간에 우리는 정확한 사실 하나를 인지하고 있다. 우리가 아직도 터널 속에 있다는 것. 터널의 끝이 어디인지, 이 어둠 속을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래도 매일 새로운 태양은 떠오르고, 우리는 또 보통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막막함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쓰는 것. 나의 시선을 글로 담고, 남편의 시선을 그림으로 담아 우리만의 책 한 권을 완성해 보기로 했다. 일단은 우리만 보는 것으로, 언젠가는 당신에게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며, 첫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인 우리의 책이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를 때쯤, 어쩌면 저 멀리로 희미한 빛줄기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왠지 그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