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혼자의 시간

by 감우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같이‘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 혼자‘의 충만함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 혼자‘에 대한 갈망이 거세어진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공간을 온전히 장악해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순간 공간 안을 가득 메운 공기, 그 안에 갇힌 시간까지도 온전히 나만의 소유가 된다. 나는 그 시간들을 사랑한다. 오직 혼자의 시간을.


내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으로 외로워 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내가 ‘혼자의 시간’을 갈망하는 것은 내가 그것을 온전히 소유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자주독립(自主獨立)‘적이라 칭하지만, 내가 그토록 당당하게 ‘자주독립’을 외칠 수 있는 것은 내가 ‘자주독립’을 진정으로 쟁취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혼자만의 삶을 꾸려 본 경험이 없고,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살았다. 처음은 부모와 형제였고, 두 번째는 엄마였고, 마지막은 남편이다. 언젠가 한 번쯤은 혼자 사는 경험을 해 보고 싶다. 그것은 일종의 버킷리스트 같은 것이 되었다.


남편은 외롭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나는 그의 입에서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발화될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공감하지 못한다. 남편은 오랜 시간 혼자 살았다. 어쩌면 그는 내가 모르는 외로움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 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신비와 환상의 구름으로 그 끝이 가리어져 있다. 그 길을 직접 걸어 본 자만이 험준함의 정도를 논한 자격을 갖는다. 그러니까 나는 외로움이라는 길이 얼마나 험하고 고통스러운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철없는 아이처럼 자꾸만 고독을 향해 손을 뻗는다.


내가 혼자의 시간을 바란다고 해서 그 시간을 특별히 은밀하게 소비한다고는 볼 수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의 일상은 같이 있는 시간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보통의 일상을 ‘혼자 보낸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왠지 모든 것들이 은밀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은밀함을 갈망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곧잘 외로움을 토로하는 남편에게 이런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란 쉽지 않다. 남편이 이 문장을 읽는다면 코웃음을 칠 게 분명하다. “이미 충분히 털어놓고 있지 않아?”하면서. 오늘은 혼자 밤을 보낸 지 6일째다. 백수가 된 남편이 부모님 댁으로 떠났다. 나는 출근을 핑계로 명절도 치르지 않고 집에 남기로 했다. 남편이 이렇게 오래 집을 떠나 있는 것은 남편과 함께 산 거의 10년의 세월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혼자의 시간이 엿새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질리지도 않고 달콤하기만 하다. 이 순간에도 남편은 어서 집에 오고 싶다고 성화를 부린다. 보고 싶다고 말하고, 보고 싶으냐고 묻는다. 나는 ’ 질리도록 보다가 고작 6일 안 본 거잖아 ‘라고 썼다 지운다. 내가 이 말을 차마 보내지 못하고 ” 반반이야 “라고 했는데도 남편은 ” 너 T야? “라고 답한다. 내가 이상한 건지, 남편이 이상한 건지, 둘 다 정상이 아닌 건지 혼란스럽다.


아무튼 오늘은 혼자 보내는 마지막 월요일이 될 듯하여, ‘혼자의 시간’에 대한 글을 써 보고 싶었다.

본문과는 상관없지만, 아무튼.

ps : 이 글 읽고 서운해하면 그건 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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