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잃어버린다는 것

명(明)과 암(暗) 그리고 하루키

by 감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 땅에는 신이 없다'를 보고 난 뒤로 그림자를 잃어버린다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해 왔다. 몇 년이 흘렀지만 아무런 답도 찾아내지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만났다. 나는 또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자를 잃어버린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 그림자란 대체 뭘까.


'그림자는 빛이 있는 곳에서 사람(본체)과 같이 움직이고, 빛이 없는 곳에서는 살그머니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밤의 어둠이 오면 함께 잠든다.' (68)_<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위 문장을 통해 나는 그림자를 생각하는 대신 그림자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빛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빛이 밝아질수록 더욱 짙어지는 존재감, 빛이 없는 곳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무엇, 그것이 그림자라면 결국, 그림자를 잃어버렸다는 말은 빛을 잃어버렸다는 말과 같은 말이 된다. 그림자를 잃어버린 세계는 온통 암흑이다. 온통 암흑인 세계에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사유의 과정을 통해 나는 '빛'이라는 단어에 '살아갈 이유'라는 문장을 대입해 보기로 했다. 나는 어떤 빛을 쫓아 나아가고 있을까. 나는 어떤 이유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의 그림자는 어떤 빛에 의해 존재할 수 있게 된 걸까.


의문으로 끝나는 수많은 문장들 틈에서 확실한 결론 하나를 건져 올린다. 온통 암흑뿐인 세계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으므로, 빛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그러니까 그림자를 잃어버리고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고. 나는 이제야 그림자를 잃어버린 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내가 하루키의 문장들에 마음을 내어주지 못한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게 된다. 하루키가 그려내는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는 그림자 자체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 그림자는 홀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림자 자체에 집중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허상에 진실이 가려지는 탓이다. 그러니까 나는 하루키의 세계가 조금은 가짜처럼 느껴진다. 알맹이는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무언가를 아름답게 포장해 놓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하루키의 책을 읽다 빛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처럼, 어둠이 없으면 빛도 의미를 상실하는 것처럼, 하루키의 세계가 그림자가 되어 빛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이제 빛을 찾아 나설 차례다. 저마다의 빛을. 저마다의 살아갈 이유를. 그렇게 찾아낸 빛을 머리 위에 올려 두고 우리의 그림자를 지켜내야만 한다.

하루키 읽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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