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끝, 다시 또 시작.

서점에서의 시간

by 감우

1년 3개월의 서점원 생활을 끝으로, 다시 새로운 길을 가기로 했다.

나에게 남은 서점원으로서의 시간은 딱 한 달, 천천히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일 년 남짓한 시간이 나를 얼마나 많이 바꾸어 놓았는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서점원으로서의 시간을 완전히 마무리하고 나면, 서점의 일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싶다.

그러니 오늘은 '서점의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서점에서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월급쟁이는 월급으로 가치가 정해지는 거야."

내가 회사를 다니며 자주 했던 말이다. 10년이 다 되도록 한 회사에서 자리를 지킨 남편에게도, 회사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회사 동료들과 한숨 섞인 대화를 나누던 때에도, 나는 저 대사를 읊어대곤 했다. 그러니까 서점에서 첫 월급을 받아 들던 순간, 스스로 나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있는 게 아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지금보다는 더 많은 월급을 받던 회사원 시절을 생각해 본다.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오직 돈 때문에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월급은 언제나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빚만 다 갚으면 때려치워야지 하며 3년을, 돈만 좀 더 모으고 때려치워야지 하며 2년을 버텼다. 다행히 빚은 다 갚았다. 돈은 충분히 모으지 못했다. 아무튼 때려치우긴 했다. 한 톨의 미련도 없이 회사 문을 박차고 나왔다. 월급이 아쉬웠던 적은 수없이 많지만 회사 생활에 대한 미련은 조금도 없는 채로 1년간 백수살이를 했다. 그때의 내 마음들이 [퇴사 이후의 세상]이라는 브런치북에 남았다. 그리고 서점원이 됐다.


나는 이곳에 와서 즐겁게 일한다는 말의 의미를 처음 알게 되었다. 동료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첫 직장이 되었고, 그만두는 게 아쉬워 '한 달만 더'를 반복하는 매우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어느 순간 돈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고 나의 가치가 떨어졌다고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까 월급쟁이는 월급으로 가치가 정해진다는 말에 이제는 동의할 수 없다. 내 가치는 스스로 정하는 거다. 월급이나 사장이나 동료가 정해 주는 게 아니고 나 스스로. 이곳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고,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뿐이다.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신간을 마음껏 들춰보며 구경하는 일도, 엉뚱한 소리를 하며 사람 속을 뒤집는 진상 손님들을 응대하는 일도, 어느새 정이 들어버린 단골들을 기다리는 일도, 동료와 쉴 새 없이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누던 일도, 그 모든 시간들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그 안에서 발견한 가치들은 알량한 월급의 여백을 메우고도 남는다.


이곳에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내가 책 이야기를 할 때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더불어 내가 직장 동료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직장인의 꿈이 퇴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이 놀라운 사실들을 전부 이곳에서 배웠다.


영영 그만둘 수 없을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참 이상한 말이다. 그러나 이게 진짜 내 마음이다.

내가 회사를 박차고 나오며 마음에 품었던 것을 이곳의 편안함과 즐거움에 취해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할까 봐.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기 위해 그만둔다.


아무튼 한 달 뒤면 서점원으로서의 시간은 끝이 나고, 사장이 될 준비를 해 보려 한다.

정말이지 격렬하게, 성공한 부자가 되고 싶다.

차도 사고, 집도 사고, 남들 다 있는데 나만 없는 명품백도 사고 싶다.

그러나 완전히 망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 길을 가기 위해 거쳐온 시간이 나에게 남긴 것을 생각하면, 완전히 망하더라도 완전히 망한 건 아닐 테니까. 그러니까 다시 또 시작이다!

업무 시간 중 독서는 서점 최고의 복지!(이런 여유가 그렇게 많이 허락되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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