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상실과 죽음의 상관관계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고 나서

by 감우

오늘은 2회 차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었고, 모임 책이었던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과 그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을 통해 발견한 어떤 통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요한네스의 탄생의 순간을 그의 아버지 올라이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고, 2부는 노년이 된 요한네스의 기묘한 하루를 요한네스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보여준다. 한 자리에서 약 두 시간이면 완독이 가능한 짧은 소설이다. 마침표 없는 문장을 처음 접한 탓인지, 1부는 읽기에 다소 버거움을 느꼈으나, 2부는 의외로 훌훌 읽혔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엔 제목의 중의적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2부에서 진행되는 요한네스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시간을 의미하는 동시에 탄생과 죽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러니까 해당 작품을 읽다 보면, 모든 인간이 일말의 예외 없이 반드시 마주해야만 하는 순간이나, 동시에 모든 인간에게 판타지의 영역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2부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임원의 절반은 2부를 읽으며 기억의 상실, 즉 치매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렇게 대화는 기억의 상실과 죽음의 상관관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익숙한 어떤 개념이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 사전을 찾아보곤 한다. 기억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사물이나 사상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기록할 기에 생각할 억을 써서, 생각을 기록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나의 뇌 어딘가에 기록해 둔 생각의 조각들이 바로 기억인 것이다. 기억을 몽땅 잃고 나면 인간은 결국 죽게 된다. 그렇다면 기억이 우리를 살게 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일까? '나'는 기억을 통해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한 걸까?


나의 세상 안에서는 내가 기억하는 것만이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의 이름을 남기려는 욕망은 보다 오래 기억되고 싶은 욕망이기도 하다. 기억의 대부분은 나 이외의 어떤 인물과의 접점을 통해 형성된다. 타인이 나의 존재를 인지할 때 비로소 나도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한,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는 일은 단 한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나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타인뿐이고, 그러니까 우리는 타인을 거울삼아 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를 비추는 모든 거울을 상실한다면, 나의 존재를 확인할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의 상실이란 세상의 모든 거울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타인의 존재를 하나씩 상실할 때마다 꼭 그만큼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죽음 그 자체 혹은 사후의 미지의 세계를 조명하기보다,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흘러가는 순간에 집중한다. 인생의 기억될 만한 장면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그곳에는 반드시 타인이 함께한다. 그것은 가장 가까웠던 친구일 수도 있고,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아내일 수도 있고, 애틋한 자식일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일 수도 있다. 그들 곁에서 존재했던 한 편의 조각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퍼즐이 채워진다.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아침 그리고 저녁, 15-16쪽)


나는 위 문장에 몹시 공감했고, 우리가 생명을 가진 후로 '함께' 존재할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은 오직 모태에서의 열 달 남짓한 시간뿐이며, 이후로는 오직 혼자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데에 적극 동의하는 바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이유 또한 오늘의 사유를 통해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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