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페미니스트에 대한 고찰
페미니스트의 올바른 정의에 대해서
이제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빠르게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더니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
라는 문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들이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임금을 받고,
동등한 일자리를 제공받으며,
성 차별적 발언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투쟁하고, 방어하는 사람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까?
사실 남편과 나는 둘 다 여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업계에
여성이 대다수로 포진되어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 보니
사회적인 성 차별과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대우에 대해 피부로 느낄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2018년도는 가히 페미니스트의 해라고 정의해도 좋을 만큼, 여러 가지 이슈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으며
여전히 여러 곳에서 성 차별이 행해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에 우리 또한 노출되었다.
말도 안 되는 사건들에 우리는 함께 분개하기도 하고,
우리가 몰랐던, 하지만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에 위화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역차별적인 상황들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요즘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사람들의 행보를 보면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저항하는 게 아니라
성 차별적이고 여성 중심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무엇이든 과한 것은 덜한 것보다 못하다는 것.
투쟁에서 승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에게라면
나 또한 힘을 실어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러자면 여자들도 '여자니까, 여자라서'의 단어는 조금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여자는 다 받아주는 남자를 만나야 해"
곧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인데, 들을 때마다 참 거슬린다.
왜 남자는 받아줘야 하고, 여자는 그걸 당연시 여기게 된 걸까.
사회에서 받는 성 차별을 내 남자에게만큼은 보상받고 싶은 심리인 걸까?
왜 남녀평등 관련 이슈가 거론될 때마다
여자가 군대 2년의 고통을 아냐, 남자가 달에 한 번씩 피 쏟는 고통을 아냐,
애를 네가 낳냐 내가 낳냐 진부하고 결론 없는 토론을 하게 된 걸까.
페미니즘의 진정한 개념이 사회적 성 평등과, 동등한 결과론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일단 평등의 개념이 제대로 확립되어야 한다.
지하철 여성 전용칸 같은 것으로 남성을 역차별하는 일도 없어야 마땅하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 범죄자 취급하는 일도 물론 옳지 못하다.
업무의 강도를 객관적인 기준화한 뒤 성에 상관없이 일 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아무렇지 않게 여자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남자니까 이 정도는 해 줘야지 하는 것들에 대해
한 번쯤 내 남편, 내 아내, 내 부모님을 대입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남이니 김치녀니 하며 싸우는 일은 굉장히 자기 학대적인 표현이 아닐지.
남편은 결혼 전,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줄게 따위의 약속을 하지 않은 데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며,
내 사회적 성공을 위해 내조하기를 서슴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여자라는 이유로 받아주는 일 없는
진정한 페미니스트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그게 가끔 울컥하며 서러울 때도 있지만, 그런 감정이 올라올 때면 나도 모르게 특별 대우를 바라고 있었구나 깨닫는 계기가 된다.
이제껏 '원래 다 그래'정도로 무력하게 치부되던
성 관련 이슈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데 대해서는
분명 긍정적인 성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혼잡한 과도기를 넘어 좀 더 성숙한 평등 사회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는 댓글이나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버리기 전에 한 번쯤 진지하게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내가 생각하는 평등은 무엇인지.
어느 한쪽이 억울해진다면 그건 분명 평등이 아닐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여성 우월주의자가 아니며
모든 남성이 남성 우월주의자는 아니라는 것.
올해는 좀 더 건강한 페미니스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감정 소모적인 성 대립 전쟁도 올해는 부디 잠잠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