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7일
그녀에게 온갖 조언과 충고를 쏟아냈던 것은
명백한 나의 교만이었다.
내가 조금 더 알고 있다는 교만,
내가 조금 더 많이 깨달았다는 교만,
내가 조금 더 상황을 분석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교만.
처음으로, 그를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누구도 이해할 필요 없었던, 피해자는 오롯이 나만 존재하는 세계로
누구와 친밀해지거나 애써 마음을 나누지 않아도 좋았던 고립으로
내 이야기를 쏟아내면서까지 누군가를 위로하지 않아도 되었던 고독으로
한 순간에 사람은 180도 변할 수 있고,
그걸 가능케 했던 사건의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다.
공감했다.
나는 그 변화에 늘 감사했는데, 누군가에게 나도 도움이 되어 주고 싶었는데,
진리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은 사실 진리가 아닐 확률이 높다.
나에게 진리였던 것이 누군가에게 진리가 아닐 확률은 더 높겠지.
나의 얕은 경험으로, 나의 작은 깨달음으로, 나의 보잘것없는 분석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판단하거나, 단죄하거나, 오롯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미묘하고 복잡한 마음들을 분석할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이제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말하기를 좋아했던 것은, 사실 나의 얕은 지식으로 젠체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내가 당신보다 더 낫다고, 내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그러니 내 말을 들으라고
나는 여러 사람을 붙잡고 열심히도 떠들어댔다.
그 수많은 말들을 주워 담아 입은 닫고, 글을 썼으면 작가가 될 수도 있었을까.
천운영 작가의 소설 '바늘'의 한 대목을 소개하고 싶다.
내 의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발설의 욕구는 일종의 충치 같은 거였다.
혀 끝에서 거치적거리며 고통을 주는, 그러면서도 잇몸 깊숙이 박혀 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충치.
그것을 뽑아 세상에 보이려 하면 이미 더러운 냄새를 풍기며 바스라져버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