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우주, 분노의 행성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지막으로 읽은 날이 언제였을까. 긴 문장의 마침표를 마지막으로 찍은 날은 언제였을까. 나는 그동안 많이 행복했나? 어쩌면 너무 많이 바빴나? 지난 일 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어 하고 돌아보니 2018년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절대'라는 말은 어쩌면 사라져도 좋을 것 같다. "참 한결같으시네요"라는 말은 칭찬일까, 욕일까. 타인과 정을 나누는 것도 어쩌면 은폐된 이기주의에 기인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또 기대하고, 나를 알아 달라고 아우성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성을 낸다. 수없이 나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타인의 입을 통해 관철되기를 종용한다. 폭력이다. 나는 누구인가 수없이 자문하지만 결국은 더 짙은 암흑이 나를 끌어당길 뿐이다. 의심의 소용돌이가 나를 집어삼킨다. 내가 확신하던 모든 것을 의심한다. 나의 신념을 의심한다. 나의 믿음을 의심하고, 내 친구의 마음을 의심하고, 결국은 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한다. 내가 알던 나를 잃어버리고, 나를 찾기 위해 주변을 더듬는다. 짙은 암흑에 둘러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잡히지 않는다. 아무리 더듬어도 내 손길에 내가 닿지 않는다. 가슴속에 분노가 가득 들어차 폭발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분노를 가감 없이 터트리는 것만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처럼. 숨을 죽이고, 몸을 낮추고, 그 순간만을 기다린다. 나의 분노가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을. 나의 우주가 멸망할 순간을. 나를 잘 안다는 사람을 증오한다. 그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한다. 나조차 알 수 없는 나를 감히 누가 안다고 말하는가. 나를 이해한다는 사람을 경멸한다.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무언가를 결심하고,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하는 일이 재미있지 않다. 모든 결심이 무너지고, 모든 목표는 부서지며, 모든 계획은 어그러진다. 나는 왜 항상 화가 나 있는 거지?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오만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작은 조각을 공감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작디작은 조각을 타인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관계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내가 옳지도, 네가 옳지도 않다. 그저 다름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싶은 발설의 욕구가 매 순간 올칵올칵 목구멍을 넘나든다. 남을 판단하려는 마음을 경계할 것. 나를 판단하려는 남을 경계할 것. 열 사람과 관계를 맺었다면 그 안에서 열 명의 내가 존재한다. 그중에 그 어떤 것도 거짓이 아니며, 그 어떤 것도 진실이 아니다. 열 명의 나를 차별 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하나를 나의 전부라고 확신하지 말 것. 탐탁지 않은 나머지 아홉도 나다. 때론 아주 상반된 의견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조금은 우습기도, 조금은 무섭기도. 분노를 조절하고 싶지도, 타인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거부한다.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비로소 말랑말랑해지는 여린 마음을 거절한다.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내일은 그러고 싶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조금 더 불편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