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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Jul 26. 2024

일기를 씁시다!

가치로운 일기를 쓰는 법.

 일기의 역사는 대부분 방학숙제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숙제'라는 단어가 앞에 붙는 순간 끔찍하게도 하기 싫어지는 마법에 걸려 항상 몰아 썼던 기억이 난다. 중고등학생 때는 대부분의 소녀들처럼 다꾸에 열중하기도 했다. 연말에 예쁜 다이어리를 고르는 것은 연례행사였고, 온갖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 꾸며놓으면 뿌듯한 성취감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일기를 검사받을 필요가 없어지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밀한 이야기들을 그곳에 쏟아놓기 일쑤였다. 쏟아내고 나면 해소되는 것들이 분명 존재했다. 나는 그 다이어리들을 꽤 오랜 기간 소중하게 보관했는데, 다시 꺼내 읽은 적은 없고 기록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어 버리지 않았을 뿐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은 결혼 즈음, 부모님의 집에서 나갈 준비를 하며 짐 정리를 할 때였다. 그것은 그야말로 판도라의 상자처럼, 펼치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 나쁜 경험을 하며, 그 자리에서 전부 찢어버렸다. 태워버리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나의 일기의 역사는 그렇게 끝이 나는 듯했다. (재미있는 것은 숙제로 몰아 썼던 초등학교 때의 일기는 여전히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그날 이후로 일기가 남기는 것은 기록의 가치가 아니라 흑역사뿐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일기 같은 건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기록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감정의 기록은 최대한 배제하고 일정 위주의 기록을 했다.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만으로도 행간의 시간들을 떠오르게 하여 만족감이 높았다. 내가 '일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시금 긴 문장을 적어 내리기 시작한 것은 플로팅을 오픈하며 시작된 플로팅 일기다.


 아마존의 초창기 (흡사 창고의 형상을 한) 사무실 사진은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라는 제목을 달고 여전히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다. 배설적 일기에 몹시 비판적이었던 나조차도 생애 첫 사업의 시작 과정을 기록하는 일은 분명 유의미한 가치를 가질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일기가 기록적 가치를 가지려면 과하게 내밀해지는 것을 지양해야 하는 것 같다. 불특정 다수가 읽을 수 있고, 누구나 읽어도 되는 글을 쓰기 위해 지난한 하루를 채에 받쳐 탁탁 걸러내고 나면, 나름 괜찮은 기록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루를 채에 거르는 과정에서 마음속의 불순물도 함께 걸러진다는 것은 공개 일기의 순기능이다. 의미 없는 불평불만, 쓸데없는 남의 험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나의 찌질거리는 감정들도 함께 걸러내고 나면 나의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은 덤이다. 일기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개운하게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나는 스트레스도 걱정도 불안도 일기에 쓰인 문장들의 행간에 두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기록하지 않은 것들을 전부 망각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의 하루도 내가 써놓은 일기만을 남기고 전부 소멸시키기로 한다. 일기를 쓰는 일이 플로팅의 매출을 올려 줄 일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괜찮은 하루하루를 쌓아가며 마음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일기가 기록의 가치를 가지려면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1. 나를 위해 쓸 것.

2. 남이 보게 쓸 것.

 내 일기를 몇 명이 읽어 주느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일기를 쓰는 행위는 오직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이 보게 써야 하는 이유가 있다. 누가 볼 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남길 것과 버릴 것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용을 정제하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니까 (아마도), 본 연재북 [내가 진짜 사장이 되다니]가 종료되더라도, 플로팅 일기는 계속될 것이다.

초등학교 때 일기는 대충 전부 이런 식이지만, 다시 읽어도 귀엽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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