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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Aug 09. 2024

이프 없는 세상을 꿈꾸며

'만약'이라는 단어를 버리기로 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몇 가지 단어를 버려야 했다.

 '절대'를 버리자 가능성을 만나게 되었고,

 '행복'을 버리자 평안이 찾아왔고,

 '완벽'을 버리자 용기가 생겼으며,

 '내일'을 버리자 비로소 오늘과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만약'을 버려야겠다.


 사실 나는 '만약'이라는 단어를 사랑했다. "만약에~"로 시작하는 여러 가지 공상들을 원동력 삼아 살았던 시간들도 분명 존재했다. 그랬던 내가 대체 왜, 그리도 소중했던 '만약'을 버리기로 한 걸까. 정확히 말하면 '만약' 뒤에 숨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말이 더욱 적확할 것이다.


 본 연재북의 연재를 시작하고 얼마지 않아  <불안을 극복하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행한 적이 있다. 나는 실제로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모두에게 통용될 만한 절대 진리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만큼은 확실한 효과를 보장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피할 수 없는 절대진리 또한 존재한다. 모든 일은 반복하다 보면 내성이 생긴다는 것. 그러니까 결국 언젠가는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모두가 눈치챘겠지만, '만약'을 버리기로 결심한 계기는 불안과 관련이 있다.


 불안이란 놈은 얄궂은 구석이 있어서 극복했다 생각하고 안심할라 치면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나를 괴롭힌다. 어제까지 자신 있던 모든 것이 일순간 난장으로 뒤집힌다. 불안이 또다시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 나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엔 조금 달랐다. 이전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바로 나의 소중한 친구였던 '만약'이다.


 '만약에 돈이 더 많았다면', '만약에 빚이라도 없었다면' '만약에 목이 더 좋았다면' '만약에 내가 유명했다면'  '만약에 직원을 쓸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만약에 순수익 얼마를 벌게 된다면' '만약에 건물주가 된다면' 끝도 없는 만약에 메들리. 만약 뒤에 현재형이 붙을 때는 우울해졌고, 만약 뒤에 미래형이 붙으면 왠지 희망이 샘솟기도 했다. 그래, 이 빌어먹을 신기루와도 같던 희망. 이것 때문에 '만약'을 사랑했더랬지. 그러나 '만약'이 오늘의 나를 비루하게 한다면, '만약'을 버릴 이유로는 충분하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만약'을 버린다.


 사실 내가 불안을 극복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나를 과보호하는 것이다. 나를 짓누르는 모든 것을 피하고, 나를 일으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만약'이 나를 짓누른다면 나는 '만약'을 버리겠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했든 상관없이, 나를 위해 너를 버린다. 나는 내일을 버리고 오늘을 얻은 사람이니, 언제 올지 모를 만약에 뒤의 문장들에 자위하는 일도 오늘부로 그만두겠다.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를 만약 뒤의 문장들을 희구하는 일을 그만두고, 오늘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당장 얻어낼 테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그것으로 만족할 테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나는, 이프 없는 세상을 꿈꾸기로 한다.

예쁜 구름을 포착한 어느 날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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