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훔칠 수 없는 것.

2025.05.20. 화

by 감우

비교적 조용한 월/화요일에 밀린 잡무들을 최대한 처리해 둬야 일주일이 편해진다. 잡무라 함은 대략 이런 식이다. 포장지 재단하기, 쇼핑백 도장 찍기, 상품 디피를 위한 사전 작업하기, 장부 정리하기, 작업 공간 정리하기 등등. (1인 사업장에서 업무의 축복이란 끝이 없지 말입니다.) 오늘은 집을 나서기 전부터 잡무 처리의 날로 마음먹고 나왔기 때문에 오늘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할 말이 없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요즘 '경쟁'이란 단어에 심취해 있다 문득 '훔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훔칠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모든 창작은 일정 부분 무언가를 훔친 결과라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훔칠 수 있는 것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고도 내 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진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데이터들, 미처 기록으로 남겨두진 못 했지만 피부로 체득된 것들, 손님들의 피드백들, 특정 상품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들. 내가 써둔 일기들, 나의 1년 치 장부, 내가 모으고 있는 방문자 데이터의 통계. 나의 수많은 실패들, 그사이에서 진흙 속 진주처럼 반짝이는 작은 성과들. 플로팅 인스타그램에 착실히 쌓아둔 콘텐츠들, 피드와 지난 광고들의 인사이트. 내가 플로팅에서 흘려보낸 고락의 시간들. 사실은 이런 것들이 전부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테다. 결코 도둑맞을 수 없는 것들. 켜켜이 쌓아 올린 나의 지난한 시간의 기록들. 내 힘의 원천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아무것도 겁나지 않게 되었다.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은 고객으로 하여금 '우월감'을 자아내는 마케팅이라고 믿는다. 내가 좀 우월감에 환장하는, 습관성 우월주의자라 그렇게 믿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는 베트멍을 사 본 적도 없고, 물론 살 돈도 없고, 베트멍의 스타일이 내 취향인 것도 아니지만, 2016년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베트멍은 내게 쿨하고 멋진 브랜드로 각인되었다. Vetememes라는 이름으로 베트멍을 대놓고 패러디한(사실 말이 좋아 패러디지 카피겠지만^^) 브랜드에 대해 법적 조치를 하지 않음은 물론, 제품 제작을 즐겼길 바란다며 응원까지 해 주더니, 급기야 각종 카피 디자인을 컨셉으로 잡아 카피 컬렉션을 올리기까지 했다. 그들의 행보를 보며 "와, 저게 진짜 자신감이지!" 했던 기억이 난다.


"마음껏 따라 해도 좋아."라는 말의 행간에는 '그래봤자 '진짜'가 바뀔 일은 없거든.'이라는 근거 있는 우월감이 숨겨져 있다. 베트멍의 우월감은 베트멍의 고객들에게도 그대로 편입되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베트멍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솔직히 좀 괴랄한 브랜드구나 생각하는 쪽에 가까웠던 나에게조차 '베트멍은 쿨하고 멋진 브랜드!'로 강하게 각인되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오늘 갑자기 잊고 있던 베트멍이 생각난 것도 일종의 운명일까? 잠시 매몰되었던 '경쟁'이라는 키워드를 내려놓고, 좀 더 진짜다운 진짜가 되고 싶어졌다. 언젠간 우리 고객님들도 플로팅을 소비하며 우월감을 느끼길 바란다. 그렇게 나도, 그들과 함께 우월해지고 싶다. 누구에게도 도둑맞지 않을 '진짜' 우월감을 가져야겠다. 언제나 그랬듯, 나만의 길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겠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은 내 전문이니까. 이게 경쟁 기피라면, 나는 그냥 경쟁 기피자가 되어야겠다.

요즘 나의 기쁨! 수형도 예쁘게 쑥쑥 크는 스테파니. 겨우내 잠시 움츠렸던 아이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면 이렇게나 무서운 성장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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