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9. 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결핍을 끌어안고 살까. 그 많은 결핍들을 끌어안은 채로 나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누구나 저마다의 결핍을 가지고 산다. 때론 너의 결핍이 나의 결핍을 자극하고, 때론 나의 결핍이 너의 결핍을 자극하면서. 서로 다른 결핍이 서로의 결핍을 공격하면서. 그 많은 결핍들을 끌어안은 채로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인간은 얼마나 모순된 존재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 차례 나 자신의 모순과 직면한다.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일순간 단점으로 반전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대부분의 단점은 결핍에서 비롯되나 그 단점은 장점의 다른 말이기도 하니 결핍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 진짜 그렇게 믿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랑의 기술> 독서 모임을 하다가 이런 질문이 화두에 올랐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장애가 되는 결핍 중 가족으로부터 온 것은 무엇인가."
번뜩 생각나는 게 없었으나 저 질문이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 번씩 생각난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가진 결핍 중 가족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을 찾는 게 더 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부모는 나를 만들었고, 나를 키웠고, 그 덕에 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만들어지고, 키워지고, 자라날 때, 결핍이 함께 만들어지고, 키워지고, 자라난다. 결핍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문장만큼이나 단호한 어조로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인간이 결핍에서 해방될 수 없는 이유는 완벽한 부모가 없기 때문이고, 완벽한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모의 잘못도 아이의 잘못도 아니다. 도저히 완벽해질 수 없는 인간 존재가 잘못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다 함께 손을 잡고 집단 자살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살아야 한다. 결핍을 끌어안고 살아야만 한다. 반드시 살아야만 한다면, 이왕이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핍을 끌어안은 나를 사랑해야 한다. 결핍을 끌어안은 너를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그 어려운 것을 해내려니 사는 일은 날로 버겁기만 하다. 어쩌면 이것이 세상에 해악만 끼치면서도 아득바득 살아내야 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부여된 형벌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사랑하는 일도, 너를 사랑하는 일도,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달성할 수 없는 과제를 받아 들고 평생 실패를 거듭하는 것이 우리의 형벌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힘들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우리의 죄업을 조금이나마 갚아내겠다는 마음으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너를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몰래 온 손님처럼 찾아온 성공과 행복을 만나게 될 수도.
어젯밤 <사유노트>의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오늘 일기의 첫 문장을 썼다. 딱히 결핍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나도 영문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관계로 힘들어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이 꼭 나 자신처럼 느껴지는 내가 있다. 이게 다 결핍 때문이다. 정확한 근원을 꼬집을 수 없어 해결은커녕 문제 파악조차 쉽지 않은 셀 수 없이 많은 결핍들. 완전히 같은 결핍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결핍이 저마다 다른 기원을 가지고 저마다의 모양을 한 채로 상충한다. 내가 가진 결핍의 집합이 곧 나 자신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결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존재할 리 없다. 이쯤 되니 결핍이 우리를 고유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모두 조금쯤 구멍 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하자. 서로 다른 구멍을 서로 조금씩 채워 주면서, 완전하지 않음을 수용하고 온전해지는 쪽을 택해야 한다. 구멍 난 나도, 구멍 난 너도, 사랑하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번 주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화창했던 일요일, 다만 너무 무더웠던 탓인지 손님은 적었다. 어제 써 둔 한 문장을 이어받아 쓰기 충분할 만큼 여유로운 하루였다. 남은 시간은 책이나 읽다가 퇴근해야겠다. 어쩐지 일하기 싫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