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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Jan 22. 2020

[넷플릭스 오리지널] 결혼 이야기

결혼이 끝나고 난 뒤에

넷플릭스에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나는 이 영화를 기대하고 있었다.

막상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자 나는 왠지 차일피일 미루며 보지 않았다.

내 돈 주고 사 먹긴 조금 비싼 초콜릿을 선물 받아 놓고 매일 박스만 열었다 닫았다 하며 먹지 않는 심리와 비슷하려나?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남편과 같이 연차를 쓴 월요일, CGV에 가서 캐러멜 팝콘과 어니언 팝콘을 반반씩 사들고 돌아와 티브이 앞에 앉았다.


서로의 장점을 나열하는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되고, 단란하고 보기 좋은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우리는 연출자의 의도대로, 저렇게 보기 좋은 부부가 대체 왜 헤어지는 거지? 의문을 품으며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 있으나 영화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가볍고 산뜻했다. 곳곳에 유머 포인트가 녹아 있어 간간히 소리 내며 웃었고, 긴 대사를 핏대 세워 내뱉는 배우를 클로즈업할 땐 연극을 보는 듯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극이 진행되면서 우리는 아, 저래서 지쳤구나, 저래서 계속 함께할 수 없었구나,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결론은 오직 하나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한 공간을 공유하고, 아이를 낳아 함께 키워도, 결국 상대방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것.

내가 알던 그 혹은 그녀는 어쩌면 내가 알고 싶은 그 혹은 그녀일 수도 있다는 것.

한창 빠져서 들었던 오지은의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의 가사가 생각났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단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날 바라보는 게 아니고 날 바라보고 있단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이혼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부부가 격하게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남편이 이런 말을 한다.

"당신도 좋아했잖아. 우리 행복했잖아. 이제 와서 괜히 피해자 행세하지 마"

아마 실제로 아내는 지금 견디지 못하는 모든 이유들을 행복으로 느꼈던 순간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땐 그를 사랑했을 테니까. 대부분의 커플은 상대방에게 빠졌던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헤어진다고 한다. 한 때는 매력적으로 보이던 것들이 어느 순간 못 견디게 싫어질 때, 사랑이 끝났음을 직감하게 된다.


서로에게 저주를 퍼붓는 중

이혼도 고상하게 할 것 같았던 지성인 부부는 결국 개싸움도 불사하며 진짜 이별을 향해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였고, 사랑이 끝난 커플이 유일하게 함께 할 수 있는 건 이별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헤어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에서 아내가 읊조리던 남편의 장점이 쓰인 종이를 아이가 아빠에게 가져다주며 끝이 난다. 그 글을 아이와 함께 읽으며 남편을 눈물을 흘렸다. 그걸 본 아내도 함께 울었다. 너무 깔끔한 수미상관 구조였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끝인 걸 알면서도 다시 또 미련을 갖게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 다시 만나게 됐더라도, 아마 다시 또 헤어졌을 것이다.



남편과 이 영화를 함께 본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이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결혼의 끝에서 비로소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된 감독 노아 바움백이 파경 후에도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 가족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린다.

영화를 소개하는 글인데 참 공감이 된다. 이별을 이토록 섬세하게, 그리고 이토록 따뜻하게 그린 영화가 또 있었던가.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지만,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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