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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Jan 03. 2020

어느새, 너를 떠나보내야 할 시간.

너를 볼 때마다 한쪽 가슴이 아프다.

중구난방으로 지껄이는 내 비루한 브런치에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는 글이 하나 있다.

바로 너의 이야기다.

https://brunch.co.kr/@cdb1063/10


저 글을 쓰면서도 나는, 참 많이 울었었는데

마지막을 향해 내달리는 듯한 너의 모습을 보니

저 때는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구나 싶다.

작은 원룸 신혼집에 놀러 왔던 너

너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엄마 집으로 달려갔을 때

나는 너의 쌕쌕 대는 숨소리와 힘겹게 내지르는 탄식 같은 신음을 들었다.

네가 너무 안쓰럽고, 네게 너무 미안해

나는 마음 놓고 울 수조차 없었다.

아빠의 사무실을 누비던 꼬질꼬질한 너

사료를 끊은 지 12일이 되었다고 했다.

간신히 먹이던 츄르와 물까지 끊은 지 이틀.

앙상하게 뼈만 남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너를 보고 있자니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아빠 사무실에 있던 너의 방

금요일에 퇴근하자마자 달려가

너를 붙잡고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네가 특히 좋아했던 신라면 박스.

네가 처음 나에게로 왔던 날의 속삭이는 울음소리

주먹만 한 아기가 식탁 위에 있던 빵을 훔쳐다

자기 밥그릇에 올려놓고 몰래 먹었던 일

네가 갑자기 내 손목을 할퀸 날

우리 함께 이사 다녔던 집들

내가 어거지로 데려온 바둑이

아빠 사무실에서 베이사로 회사를 누비던 순간들

얘기를 하다 보니, 정말 긴 세월을 너와 함께 했더라.

나의 10대와 20대는 전부 너와 함께였어.

추운 겨울 담요를 폭 덮어 주면, 너는 가만히 그 속에서 골골댔었지

진통제를 맞추러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이 입안이 많이 괜찮아졌다고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말을 해 주셨다.

너를 데리고 와 곧장 츄르를 주사기에 넣어 입 속으로 밀어 넣는데

신통하고 기특하게도 너는 그걸 꼴깍꼴깍 받아먹었잖아..

그래서 나는 네가 그렇게 급하게 가 버릴 줄은 몰랐다.

침대보 밑에 스스로 들어가 누운 너를 보며 얼마나 웃었던지

우리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사실 너를 보낼 준비라는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몸집보다 훨씬 작은 박스를 기어코 들어가길 좋아했잖아

밥이랑 물을 조금씩 먹어 주는 너를 보며

그래도 조금은 더 살겠구나 안도해 버렸다.

오늘은 병원에 가서 끊었던 영양제도 다시 맞추고

검사도 다시 받아 보자고 희망찬 얘기를 하고서는

옷 갈아입으러 집에 잠깐 들렀는데

그 사이 네가 갈 줄이야......


전날 밤 자고 있는 나를 발치에서 가만히 바라보던 네가 생각났다.

잘 앉지도 못하던 네가 앉아서 나를 지켜 보는 걸 보며

나는 그저 기력이 돌아온 줄로만 생각했다..

너는 나에게 인사를 한 거였어...

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너무 별로 없어..

너의 마지막 모습은 정말이지 편안해 보였다.

어찌나 아기같이 예쁜 모습으로 누워 있던지

그냥 곤히 잠들어 있는 것만 같았어.

온 가족이 함께 보내줄 수 있도록 토요일 오후에 급히 가버린 네가

마지막까지 어찌나 짠하면서도 고맙던지.

엄마 빨래 개는 바구니에 꼭 먼저 들어가 버려서 엄마가 매일 잔소리했었잖아

없는 집 자식은 일찍 철이 들어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데

그게 꼭 너를 두고 하는 말 같아.

그래도 오래 고통받지 않고 떠난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너는 정말 아름다운 고양이였어. 이 때는 털이 제법 길었네

이렇게 오래 함께한 반려동물을 보낸 건 네가 처음이었는데

마지막까지 우리를 배려하듯 착하게 떠난 너를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 기분이 좋고 편안할 땐, 늘 이 자세로 잠을 자곤 했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네가 아직 떠나기 전이었는데

자꾸만 눈물이 복받쳐서 쓰다 멈추기를 반복하다 보니

결국 네가 떠난 지 2주가 지난 오늘에야 이 글을 마무리하네.

바스락거리는 새 이불 위에서 너와 뒹굴거리던 날

그래도 너의 모든 생에 내가 함께할 수 있어서

마지막을 온전히 함께 보내 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사랑하는 베리야,

우리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못다 한 이야기를 더 해줄게.

네가 떠난 이후로도 나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그때는 내가 다 이야기해 줄게.

바둑이랑 저렇게 엉덩이를 꼭 붙이고 앉아 있는 게 너무 귀엽고 신기해서 찍었던 기억이 난다

네가 내 고양이여서 정말 행복했어.

네가 내 가족이 되어 줘서 정말 고마웠어.

내가 준 건 별로 없는데, 네가 준 건 너무나 많아서,

그걸 마지막 순간에서야 깨닫는 못난 나라서

정말.. 미안해..

잘 가 베리..

이땐 바둑이가 아직 아기였구나. 널 참 잘 따랐었지
박스를 사랑하던 어린 시절의 네가 사랑스럽다
남은 원단으로 스카프를 메 줬는데, 까칠한 네가 웬일로 가만히 있어 이런 깜찍한 사진도 건질 수 있었네
너는 털이 긴 게 참 예쁜데.. 털 뭉치를 토하는 네가 엄마는 많이 걱정됐던 모양이야... 이 사진은 너를 보내는 마지막 사진으로 사용했단다..
얼굴을 들고 앉을 기력조차 없어진, 떠나기 며칠 전의 너...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이 모습까지도 잊지 않고 기억할게.. 이제 진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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