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결론 나옴
만약 내 브런치 글을 빠짐없이 읽어온, 나조차 이해하지 못할 특이한 분이 존재한다면, 그분은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진짜'를 찾아 헤맸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늘 진실만을 추구했다. 진실로의 도달 여부와 관계없이, 내 나름대로의 진실을 쫓는 일을 멈추어 본 적 없다는 것만큼은 명징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이란 대체 뭘까? 나는 그것을 '꾸며내지 않은 본래의 형태', '드러나지 않은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찬 것' 등의 문장으로 정의해 보았다. 나는 진실을 찾기 위해 내 안에 존재하는 칠흑 같은 터널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탐험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대부분의 진실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었고, 차라리 더럽고 추악한 쪽에 가까웠다. 때때로 진실은 옳음보다 그름에 가까웠고, 그렇기에 진실을 숨기는 것이 옳은 쪽일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니까 진실을 좋은 것, 거짓을 나쁜 것으로 이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는 깨달음을 미리 전한다.
인간이 가장 진실해지는 순간은 홀로 있는 순간이다. 사회적 관계를 맺는 순간, 그 관계 안에서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순간, 생각이 말이 되어 소리로 발화되는 순간, 생각이 글이 되어 활자로 치환되는 순간조차도, 순수한 형태의 진실은 반드시 일정 부분 오염되고 만다. 나의 진실을 그 누구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형태로 꺼내어 보여 줄 수는 없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이자 축복이다. 그러니 내가 달아둔 제목, '진정성이 시장에서 통할까?'라는 문장은 사실 성립조차 될 수 없는 것이다. '진짜' 진정성은 시장으로 꺼내 놓는 것 자체가 불가할 테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진실과 가까운 형태의 나를 보여 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인정 욕구가 강한 편이었는데, 한 발 더 나아가 보자면 '진실에 가장 가까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아무리 더럽고 추악하더라도, 그게 진실이라면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빛난다고 믿었고, 이는 SNS와 도무지 친해질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이런 나를 두고 남편은 '반골'이라고 했다. 나는 '반골'이라는 말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인지 자꾸만 남들과 반대로 걸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다소 비틀려 있는 나의 성향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에게 나를 드러낼 필요가 없었고, 그렇게 하고 싶은 욕구도 없었다. 매일 만나는 사람만 만났고, 자주 내 안으로 침잠했으며, 그 안에서 음침한 진실들을 하나씩 길어 올리며 홀로 평안을 얻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플로팅의 사장이 되었다. 국면이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성심을 다해 쌓아 올린 성벽을 내 손으로 허물어야 했고, 그토록 부르짖던 진실보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해졌고, 불특정 다수에게 플로팅을 알려야만 하는 임무를 받아 들었으므로 나 또한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거나 '이왕이면 다홍치마'같은 옛 말들을 떠올리며 이전에 하지 않았던 많은 일들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글이었다. 글은 언제나 말보다 진실했으므로, 나는 말 대신 글을 쓰기를 선택했다.
그것은 고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였다.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데'따위의 생각을 하면서도 인스타그램 캡션에 장문의 글을 적기를 멈추지 못했다. 하다못해 스토리에도 구구절절 쓸데없는 글들을 써재꼈고, 매일 공개된 지면에 일기를 썼고, 기어이 블로그까지 시작했다. 곳곳에 이런저런 영양가도 없는 글들을 싸지르면서, 내가 시장과 완전히 타협하지 않고 여전히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위했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이지, 고객이 아닌 나를 위한 행위에 가까웠고, 그러니까 사업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옳지 못한 행동에 가까웠다.
그러나 여기에 반전이 있다. 내가 '진실 추구'라는 명목으로 사업적 측면에서 옳지 못한 행동들을 신나게 하고 있는 사이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졌다. "사장님 일기 잘 읽고 있어요."라고 수줍게 말해 주던 손님, "블로그 보다 보니 플로팅이 궁금해져요"라고 댓글을 달아 주신 이웃님, "일기 읽고 찾아왔어요."라며 가득 찬 장바구니를 카운터에 올려놓고 밝게 웃으시는 손님, "사장님 글들을 읽다 보니 저랑 생각이 비슷하신 것 같아서요."라며 가방에 든 책을 꺼내 추천해 주신 손님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 현상을 '공명'이라 표현하고 싶다. 내가 싸질러둔 글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고, 우리는 그렇게 활자를 통해 공명했다.
그렇다면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진정성이 시장에서 통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YES! 일부 편집된 진정성이나마 최대한 형태를 보존하여 시장에 내놓았다고 가정해 보았을 때, 이것은 가장 뾰족한 형태로 특정 타깃을 겨냥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진정성은 폭발적인 파급력을 가져올 수 없고, 통하는 날보다 안 통하는 날이 더 많다는 것이 슬프지만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한 번 통하기만 하면, 단단하게 연결되어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꾸며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있는 그대로를 인정받으면 그것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것도 진정성의 빛나는 이점이다.
그러니 이 자리를 빌려, 나는 앞으로도 쭉,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나의 모습으로 여러분과 소통하겠노라 약속해 본다. 그 모습이 매번 아름답지는 않을지라도, 때때로 괴이쩍게 느껴지더라도, 잘 보이기 위해 애써 나를 가짜로 꾸며내지는 않겠다고, 언제나 당신들을 진심으로 대하겠다고 말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내가 큰 성공을 이루면 좋겠다. 그래서 큰 목소리로 "우리 제발 좀 진실되게 삽시다! 그래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소리칠 수 있으면 좋겠다.
ps: 참고로 가장 진실에 가까운 '나'는 이곳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 안에서의 '나'입니다.
진실(眞實):
1. 거짓이 없는 사실.
2.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름.
진정성(眞情性):
진실하고 참된 성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