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1. 일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하면서도 의외로 여유로웠던 일요일. 오랜만에 화창한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제법 가을다웠던 하루. 그래서인지 손님도 일요일치고는 꽤 많았던 편.
요즘 출퇴근길에 김영하 작가의 <다다다_보다 읽다 말하다>를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다.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제법 많이 읽었는데,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고, 모든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딱히 다시 읽고 싶은 작품은 없는, 내 기준에서는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살짝 애매한 작가다.
나는 그가 매우 훌륭한 이야기꾼이라 생각하고, 상상력과 재치가 무척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하며, 흡인력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필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뭐라고 평가를 하겠냐만은, 아무튼 독자 입장에서 그렇습니다.) 다만 뭐랄까, 내면에서 길어 올리는 글을 쓰는 작가로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는 두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끈질기게 자기 내면을 탐구하여 온 힘을 다해 자기 자신을 여러 형태로 쏟아내는 유형, 하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여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유형.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김영하 작가는 후자에 속하는 작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전자 쪽의 글을 조금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가끔 인간 김영하의 말을 들을 기회가 생길 때, 그때마다 나는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에 꽤나 공감이 되었다. 김영하의 소설보다 인간 김영하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을 때, <여행의 이유>를 읽게 되었다. 좋았다. 꽤 많은 문장에 밑줄을 쳤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구독 중인 오디오북 어플 '윌라'에 김영하 작품들이 대거 업로드되었을 때, 나는 꽤 기뻤다. 그리고 오늘 <다다다>를 듣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관적 현실주의에 두되 삶의 윤리는 개인주의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동조될 때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를 저는 건강한 개인주의로 부르고 싶습니다.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때의 즐거움은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물건을 사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뭔가를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입니다. 즉, 구매가 아니라 경험에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비관적 현실주의'와 '건강한 개인주의'. 그래, 바로 이거였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 김영하가 조금 더 좋아졌다.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을 본 뒤로, 나는 자주 그 드라마를 생각한다. 특히 상연을 자주 떠올린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확실히 은중보다는 상연을 닮았다. 아무도 구석으로 내몰지 않았는데 자꾸만 스스로 고립되는 상연을 볼 때, 그게 안타깝기보다 이해가 될 때, 어쩐지 자꾸만 은중이 덩달아 미워질 때, 공감받았다는 기쁨보다는 '왜'라는 의문이 남았다.
아직까지는 이 미묘한 감정을 설명할 문장을 찾지 못했으므로,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아무튼 안 보셨다면 보시길 추천! 남은 시간은 책을 읽을게요. 아참, 북클럽 도서인 <여수의 사랑>이 오늘 품절되었습니다. 북클럽의 효과인 건가..?! 굿굿! 드디어 다음 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