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3. 목
오늘 나름 많은 일을 한 것 같은데 대체 왜 내 자리는 여전히 폭격을 맞은 상태인 건지.... 한 번에 다량의 상품을 주문했더니 정리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에 첫 거래를 튼 '페이퍼리안'에서 다이어리와 캘린더 등 시즌 상품을 다량 주문했는데, 이런 제품들은 단순히 바코드 붙여서 자리만 잡아 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설명도 덧붙이고, 섹션 구성도 잘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더더욱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와중에 다른 거래처에서도 줄줄이 상품들이 입고되면서, 종일 바쁘게 돌아치면서도 돌아보면 제자리 뛰기를 하는 듯 진전되지 않는 하루가 되고 말았다. 임시 휴무 제도를 없애면서 야근은 정말 하지 않으려 다짐했는데, 결국 또 여덟 시가 넘어서야 일기를 쓰고 있는 이유. 주말 전에 이걸 다 정리할 수 있을까.
알고 보니 오늘은 수능 날이었다. 작년 이맘 때는 플로팅이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기 때문에 수험생 이벤트 같은 것은 시기상조라 생각했고, 대신 나름대로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편지 같은 것을 인스타그램에 띄워 보냈다. 올해는 수험생 이벤트를 해 보기로 했다. 나도 여전히 어리지만(어리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보면 조금도 부럽지 않고 어쩐지 애잔한 마음이 든다. 내가 통과해야만 했던 그 지난했던 시간들을 이 친구들도 통과해야만 하겠지 싶은 마음에, 내가 덩달아 지치는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다. 주제넘은 오지랖일 수도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언제나 그들을 있는 힘껏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오늘부터 올해의 마지막 날까지, 수험표를 가져오면 전 품목 10% 할인을 해 준다. 또 참지 못하고 긴 편지를 함께 띄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만약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정말이지 열심히 공부할 것 같다. 좋은 대학에 가서 학생증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대변되는 삶을 살아 보고 싶다. (예전에 서울대 합격한 친구를 만나면 '야, 너는 학생증 목에 걸고 다녀라'하는 농담을 던지곤 했는데, 당시에는 나름 짓궂은 농담이었지만 사실 그건 정말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얼마 전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한 오랜만의 식사 자리에서, 학벌은 학창 시절 성실함의 증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십분 공감하는 바이다. 그래서 내 삶이 조금 더 고단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성실함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그들과는 다른 방법을 써야 했으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인생도 꽤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학생증 대신 나를 증명할 방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응용력을 키우며 나름대로 분투하는 삶도 꽤 멋진 것 아닌가.
내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아마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편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일 테다. 그러나 삶이란 것은 결국 다 살기 나름이라고, 다 저마다의 방법과 길이 있는 거라고, 빨리 갈 수 없다면 돌아가면 그만이라고, 가시밭길도 길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다만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지며 살 뿐이라고, 결국엔 이 이야기를 해 주게 되겠지. 삶이란 계속 이어지기에 살아 볼 만한 것이다.
수험표를 들고 오는 학생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해사한 미소에 따뜻한 웃음으로 응답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너를 응원하고 있다고, 입이 아닌 눈으로 되도록 많이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리할 게 여전히 산더미지만, 일단 퇴근을 해야겠어요. 삶은 어차피 계속 이어지는 거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