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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원GONGWON Jul 08. 2024

감정의 폭우 끝에 흘러온 고요

장면 1.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별의 별일을 다 겪는다. 그중에 우리는 인간(人間)이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에서 그 별의 별일을 크게 겪지 않을까.


어찌하다 보니 어떤 사람 J를 겪고 있다. 어떻게 본다면 내가 걸어왔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일종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처음이니까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실수에 대한 안타까움, 그럼에도 J의 행동이 온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 나는 J에게 양가적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밥 10000000000000만 공기 더 먹은 사람으로 나름의 관심과 조언을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나의 기대와 다르게 내 나름의 관심과 조언이 J에게는 허상과 잔소리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불편한 기색만이 역력했다. 되레 전혀 예상치도 않은 J의 거친 생각들에 카운트 펀치만 얻어맞았고, 상황을 부드럽게 만드려 던진 농담은 나만 불안무안하게 만들었다. 지켜보는 은사님 말씀처럼 신종족의 언어인가 싶었다.


장면 2.

새벽부터 거친 비가 쏟아졌다. 지난해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후 비는 불안과 예민함을 가져다주는 불청객이었다. 회색빛 폭우로 가려버린 창 밖 풍경에 이른 아침부터 겪은 생각지 못한 J의 말들, 여기에 그간 누적된 고민들이 점철되어 감정이 요동친 하루를 보냈다.


그 사이 나는 내 주변에 J의 이야기로 도배를 했다. J의 신종족 언어에 버금가는, 어쩌면 전대미문의(!) 언어들이 오갔다. 나를 생각해 주며 한 언어들에 웃음이 터지길 여러 번. 내 선택으로 빚어낸 아찔한 결과들이지만, 그럼에도 휘황찬란한 언어들로 나를 북돋아준 이들에 고마움과 동시에 배덕감을 느꼈다. '그 전대미문과 휘황찬란한 언어들에 가슴이 내려앉았던 과거의 나와 피안대소하는 지금의 나, 이게 맞는 걸까.'


장면 3.

퇴근시간이 넘었다. 감정의 폭우 끝에 흘러온 고요가 창 밖에 흘렀다. 지나온 하루를 정리하려 했지만, 고요가 가져다준 끝을 맺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음악을 들으며 침잠하려 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걸까. J가 던진 돌 때문이었을까. 그 돌의 무게와 성질이었을까. 혹은, 그간 쌓여온 고민들이 돌과 함께 던져온 것일까.


어쩌면, J가 차마 입으로 꺼내지 못해 수첩에 적었던 그 말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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