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부부는 왜 날 만날까.
왜 날 만나는지에 대한 J누나의 첫 답이다. 대학교 학과 동기인 J형과 학과 선배 J누나는 오랜 기간 연애 끝에 결혼한 부부다. 둘 다 같은 학과 동기이자 선배로 1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맛있는 식당에 가 밥을 먹고, 좋은 곳이 있으면 같이 여행도 간다. 이따금 번개로 부부가 사는 집에 찾아가 J형이 사랑하는 88닭강정에 맥주를 마시며 회포를 풀고, 형형색색 미러볼 아래 유튜브로 추억의 음악을 켜며 감상에 젖기도 한다. 그렇게 발생하는 흑역사로 추억을 만들고, 언젠가 한 번씩 꺼내보며 피식 웃는다.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만나는 일을 좋아하진 않아. 그만큼 인간관계가 철저히 제한적이야. 너와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는 건 오랜만에 봐도 부담 없고 편해서이지 않을까."
J누나 다운 답이었다. J누나는 많은 사람보다 본인과 잘 맞는 소수의 친구와 오랫동안 깊은 인연을 이어갔다.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과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오롯이 집중했다.
하루는 사람 속 긁는 사람들이 있어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과신하며 상대방을 교묘하게 (혹은 대놓고) 깎아내리거나, 맥락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 흐름을 방해했다. 좋은 사람들임에도 한 번씩 저렇게 대하며 내 속을 긁었다. J누나에게 이야기하니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나도 그런 애 있었어. 나 조금씩 거리 두다가 연락 안 하고 지내. 걔랑 연락 안 하고 사니까 얼마나 좋은지! 너도 거리 두고 연락하고 지내지 마. 괜히 나만 스트레스야."
관계는 늘 감정에 투영된다. 사람을 떠올릴 때 느끼는 감정에 따라 관계의 지속이 결정된다. 확장보다 선택에 집중하는 J누나이기에 더욱 진심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난 처음에 듣고 멍청한 질문이라 생각했어. 친한 사람 만나는 게 이유가 무슨 이유가 필요가 있나 싶었잖아. 근데 나도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야. 신선했어."
"맞아, 나도 신선하게 느껴졌어. 너한테 듣고 나도 생각해보게 됐다고 해야 할까."
J형은 평소 성격대로 시원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질문에 대한 취지에 대해 본인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J형은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한다. 대학생 때 J형은 학과 동기들은 물론 선후배와도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연락해보면 '어디 누구누구하고 모임 있다.', '기숙사 룸메이트들과 어디 어디 나왔다.' 등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아마도 나보다 내 동기 소식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J누나와의 시간이 가장 많지만.)
"근데 왜 이 질문을 하게 된 건지 궁금하네."
J형은 내게 물었다.
나는 이 글을 쓰게 된 취지를 이야기하였다. 묵묵히 듣던 J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만난다는 것은 굉장히 수고스러움 일이라는 것에 나도 동감해. 나도 사람 만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게 어느 상대냐에 따라 다르지. 가까운 사람, 친구, 가족끼리도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해서 감정 소모가 있을 수 있잖아. 회사 동료라도 서로 동질감을 느낀다면 친구 혹은 가족보다 감정 소모는 적을 것 같아."
나는 평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때론 가장 먼 사람이라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가족이지 않을까.) 가장 가까운 사람일지언정, 마음속 이야기를 쉬이 털어놓기 쉽지 않다. 나의 힘들고 아픈 감정이 혹여 이 사람에게 전가되어 슬픈 마음이 들까 봐.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동정보다 공감으로, 서로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 J부부가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행여 너를 만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낄 것 같다고 생각하잖아. 사람들은 널 편안하게 생각해. 그건 걱정 안 했으면 좋겠어."
"맞아, 너 자신을 갉아먹지 마."
J누나와 J형은 진심을 꾹꾹 담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넸다. 오랫동안 깊이 담고 있던 이야기를 끄집어낸 느낌이 들었다. J누나는 이 기세를 몰아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는 네가 받았으면 좋겠어. 너는 항상 베푸는 친구잖아. 너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는데, 너 생일 때는 선물 받는 게 어색해서 나한테도 그렇고 주변에 알리지도 않잖아."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걸 좋아했다. 잠깐이라도 얼굴 볼 때도 인스터트 커피, 비타민 분말스틱 하나라도 챙겨 손에 쥐어주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 중 하나였다. 반대로 내게 오는 것은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내 생일에 축하인사, 생일선물 받는 것도 불편해 카카오톡 생일 정보도 비공개로 해놓았다. 몇몇 이들은 '항상 내 생일은 챙겨주면서, 왜 본인 생일은 안 알려주냐' 토로한 적 있다.
"나는 받은 만큼 줘야 한다고 생각해. 받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안 받으면 내가 너무 불편해."
J누나의 말에 듣고 문득 지난번 타 직장동료 A와 B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그때도 내가 표한 배려가 되레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 역시 나 편하고자 했던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이 말을 들은 이후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줘야 한다는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그렇게 내려놓아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은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고, 상대방에 내게 주는 마음도 더 고맙게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받는 법도 알아야, 주는 법도 더 잘 아니까.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어쩌면 J부부처럼 지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J부부는 서로 다른 성격과 생각, 소신을 가졌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좋은 영향을 주며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10년 넘게 만나며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는 것이 느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