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만난 절친한 누나 G는 왜 날 만날까.
나를 왜 만나는지에 대해 물은 G의 첫 답이었다. G는 군 전역 후 복학한 뒤 만난 누나다. 처음 만날 당시는 내가 근무하던 교내 팀의 조교였고, 나는 대내 활동을 맡고 있었다. 서로 유머 코드가 곧잘 맞아 즐겁게 활동하였고,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의 케미는 절정이어 제법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 때가 있었다.
"만나면 만날 수록 공감대 형성이 잘 되더라고. 약간 애늙은이 같은 동생과 대화하다 보면 배울 점도 많고 깨닫는 것도 많고 위로받기도 해."
G와 나는 서로 다른 직종에 있지만, 같은 직장인으로서 서로 느끼는 고충도 비슷했다. 업무하다 겪은 일들을 토로하고 공감하며 일종의 '한풀이'를 하다, 근본 없이 던져지는 유머와 'ㅋ'의 남발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근무하다가 '풉'소리와 함께 입을 막으며 웃을 정도였다.
"인생은 나보다 쬐에에에꼼 덜 살았지만, 생각이나 사람을 대하는 건 나보다 훨씬 나을 때가 많아. 참 대단하다 싶더라구."
나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지만, 내 생각엔 G가 더 대단했다. 일전에 대내 활동을 했을 때, 내 무지로 곤혹스러운 일이 생긴 적이 있었다. 당시 G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내가 만든 콘텐츠에 크나큰 실수가 있었던 것이다. 자칫하면 학교가 금전적 책임을 져야 할 상황에 G는 슬기를 발휘해 말끔하게 일을 처리했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스커피 한 잔 사들고 사무실로 찾아가 석고대죄를 한 기억이 난다. 그때 고마움과 미안함이 아직도 남아있다.
"누나가 대단하지.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가끔 Y누나하고 같이 만나서 이야기할 때 보면, 누나 참 대단하다 생각해."
G의 동갑내기 친구 Y와도 학교에서 만나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 셋이 이따금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G가 현재 겪고 있는 상황이 때론 녹록지 않을 때가 있었다. G 뿐만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 봉착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해결해나갔고, 오히려 앞서서 준비해나갈 때가 있었다. (가령 나와 한참 달랐던 통장 잔고 숫자라던가..) G의 모습이 그저 대단할 따름이었다.
"아니야. 너도 살기 힘들 텐데 누나들 찡찡거리는 소리 다 들어주고 고맙지. 근데 가끔 이런 생각도 들어. 누나들 힘든 건 네가 젤 잘 알아주는데, 너 힘든 건 누가 알아주려나."
무심코 던진 듯한 G의 이 말이 갑작스레 흘러 타고 온 물결처럼 느껴졌다. 때론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이미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본인도 그만큼 겪어봤기에 아는,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것.
사실 제일 힘든 사람은, 결국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상대방도 분명 힘든 순간이 있을 터인데, 내가 힘든 점을 듣고 있는 것도 얼마나 고달픈 일인가. 군대에 전역하고 얼마간 불안감과 우울함이 날 겹겹이 누른 적이 있다. 그때는 너무 어렸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막연함이 앞서있었다.
절친한 지인 몇에게 감정을 표출한 적이 있었다. 처음엔 다들 다독여줬지만, 결국 답답함에 역정 어린 말을 하였다. 이들도 그때의 나처럼 어렸고, 다들 본인이 처한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각자 처한 상황도 버거웠을 법했을 텐데, 이런 내가 얼마나 화가 났을까.
언제부턴가 내 이야기를 토로할 때도 있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공감하려 노력한다. 이런 아픔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또, 나 자신도 반추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G와의 대화를 통해 얻는 것처럼,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워간다는 것을 느끼기에.
"그래서 네가 빨리 여친 만들었으면 좋겠어. 그런 의미에서 소개팅하지 않을래? 비혼식 같은 멍멍이 소리는 하지 마."
마음 같아선 눈물 훌쩍 거리는 카카오 프렌즈 네오 이모티콘을 100만 개 보내주고 싶었던 그 감동의 물결이 사그라들었고, 얼른 화제를 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종의 본능과도 같았다.
"아쉬운 건 없었어?"
"아쉬운 거? 말했잖아! 소개팅 좀 해."
"누나한테 고마운 게 참 많아."
"지어내지 마. 나에게 고맙다면, 우리 회사에서 하는 이벤트 좀 넣어주지 않으련? 신청자가 너무 저조해.."
괜히 말을 꺼낸 듯했지만, 어느 순간 이벤트 신청서에 인적사항을 적는 내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나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