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J는 왜 날 만날까.
왜 날 만나는지에 대한 친구 J의 첫 답이다. J는 고등학교 친구이다. 사진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시작해 같은 반에서 한 학년을 보내다 어느덧 10년 넘게 연락해 온 절친한 친구이다. J는 대구의 한 대학교에 진학하였다. 그길로 J는 대구사람이 되었고, 지금은 대구 번화가에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대구가 너무 좋단다.
"어찌됐든, 사람을 만나는데는 시간과 돈을 쓰잖아. 근데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잖아. 너는 그걸 당연히 여기지 않으니까."
나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사이가 편안해지다보면, 그 편안함이 당연해지기 마련이다. 편안함에는 누군가의 불편함을 수반한다. 인간 관계에서 잡음이 생기는 이유도, 그 편안함에서 발현되는 것도 있지 않을까.
나 역시도 한편으론 당연하다 여겨진 것이 분명 있었다. '이건 할 수 있겠지'란 생각, 아니 이런 생각이 끼어들 틈없이 당연하게 주어진, 마치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생성된 고유한 권리처럼 말이다. 내가 J에게 그러진 않았을까. 어쩌면 단 한 번이라도, 나는 J에게 그런 마음을 지녔었다. J의 말을 곱씹다보니, J에게 미안해졌다.
"어찌됐든, 이렇게 마음 맞는 친구와 얼굴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지."
J에게 늘 고마운 건, 단 한 시간이라도 얼굴을 보려 나에게 먼저 연락한다는 것이다. 어느 이른 저녁 즈음에 J에게 연락이 왔다. 고향에 오는데, 저녁에 얼굴이나 볼 수 있음 볼까 해서 연락했다고. J는 긴 시간 운전을 한 탓에 피곤함에 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피곤함과 바쁨을 뒤로한 채 오롯이 나와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연락했던 것이다. J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는 과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행하는 무언가에서 불편함을 느꼈을까. 단지, 이 사람과의 시간을 위해 행하는 모든 것이 어느 것보다 좋았다면, 따져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잴 수 있었을까. 물리적 시간이든, 금전적이든, 마음 한 켠이었든.
나는 과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쏟았던 시간들이 동일하였을까. 그 사람들이 가족이든, 친구든, J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