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전자(電子)의 문장

밥벌이의 현장에서 지피티(GPT)를 마주하다

by 임현

1. 키보드는 차갑다. 손가락 끝에 닿는 플라스틱의 촉감은 무미건조하다. 나는 매일 오전, 부서의 실적과 지표들을 가다듬어 하나의 문서로 벼린다. 그것은 문장이라기보다 생존의 기록에 가깝다. 숫자는 정직하고, 조사는 엄격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배운 세대다.


내 밑의 김 사원은 다르다. 그는 가볍다. 그가 사용하는 마우스의 클릭 소리는 경쾌하다 못해 경박하다. 내가 공들여 정리한 문장들이 그의 모니터로 넘어가면, 그것은 즉시 ‘기계의 자궁’ 속으로 던져진다.


2. 지피티(GPT)라고 불리는 전자의 뇌는 실체가 없다. 김 사원은 내가 준 날것의 정보들을 그 차가운 회로 속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 명령한다. “공지용으로 다듬어줘.”


기계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문장을 뱉어낸다. ‘존경하는 임직원 여러분’, ‘찬란한 성과’ 같은 낯간지러운 수식어들이 비린내를 풍기며 화면을 채운다. 김 사원은 그것을 읽지 않는다. 검수하지 않는다. 그의 손가락은 ‘복사’와 ‘붙여넣기’ 사이를 단호하게 오간다.


필터는 없다. 기계가 뱉은 오물과 정수가 뒤섞인 채 전 사원의 메신저로 뿌려진다. 문장은 비문(非文)으로 가득하고,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회의 일정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그것은 문장의 타락이고, 노동의 직무유기다.


3. 어제는 사달이 났다. 거래처 미팅 시간을 기계가 제멋대로 한 시간 앞당겨 공지한 것이다. 회의실은 비어 있었고, 거래처 사장은 분노했다. 나는 김 사원을 불렀다. 나의 분노는 육중했으나, 그의 대답은 서늘할 정도로 가벼웠다.


“GPT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표정은 당당했다. 마치 신탁(神託)을 전하는 사제 같았다. 잘못은 기계가 했으므로,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논리다. 기계는 자아가 없으니 문책할 수 없고, 인간은 명령만 내렸으니 죄가 없다는 식이다.


“GPT가 시키면 독약도 마실 텐가?”

내 질문은 허공을 갈랐다. 김 사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건 지피티한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유해성 검증을 해줄 겁니다.”


4. 퇴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낡은 서류 뭉치 같았다. 이제 이 사무실에서 문장을 책임지는 자는 없다. 단지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자와, 그것을 배설하는 기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커서가 깜빡인다. 나는 습관적으로 검색창에 입력을 주저거린다. ‘MZ후배와 일하는 법‘ 초록색 장에 넣어 본다. 아니지 요즘은 AI 시대잖아 AI에게 다시 질문 해 본다.


화면 위로 전자의 활자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기계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전원을 껐다. 밥벌이의 지겨움보다, 문장의 실종이 더 시린 겨울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