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줄과 인맥 사이

B병원 B대외협력실장 이야기

by 임자못

오전 7시 35분. 아침을 깨우는 카페인 한 잔을 위해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라인에 진입했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마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이 조합을 사랑한다. 모닝커피 한 잔의 여유가 그날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차례가 오길 기다리던 그때, 정적을 깨고 휴대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뜬 세 글자를 확인한 순간, 등줄기에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7병동]


출근 시간도 전인데 병동에서 걸려온 전화라니. 불길함은 단 한 번도 나를 비껴간 적이 없다. 전원이 필요한 응급 환자가 생긴 걸까, 아니면 밤사이 사고라도 터진 걸까. 떨리는 손가락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수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문제의 환자는 어제 수술 직후 소변줄을 연결했다. 소변줄을 연결하면 이물감과 뻐근한 통증은 피하기 어렵다. 대개의 환자는 이를 악물고 참아내지만 문제의 환자는 그 불편함을 참지 못한 모양이었다. 간호사들이 아침 회진 준비로 분주한 틈을 타, 환자가 제 손으로 소변줄을 잡아 뽑아버린 것이다.


"바닥이 피로 낭자해요, 실장님. 환자분은 아프다고 소리치시고, 병실 지금 난리났어요!"


강제로 뽑혀 나간 관을 따라 상처 입은 요도에서 혈액이 쏟아졌단다. 분명 무리하게 소변줄을 제거한 탓에 요고관에 상처가 났을터다. 요도 파열이나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병원에는 비뇨의학과 전문의가 없다. 당장 요도 내시경이 가능한 비뇨의학과를 찾아 상태를 확인하고 응급 처치를 받아야 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인근 병원들이 문을 열려면 한 시간은 족히 남은 시간이었다.


결국 '대외협력실장'이라는 직함값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대외협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이름이지, 자조 섞인 혼잣말을 내뱉으며 주소록을 뒤졌다. 개인적인 인맥을 총동원해 아는 형님, 동생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미안해. 진짜 급해서 그래. 지금 바로 요도 내시경 할 수 있는 병원 좀 알아봐 줄 수 있어?"


전화기 너머로 "이 시간에 어딜 가냐"는 핀잔이 들려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대여섯 군데를 수소문한 끝에, 다행히 "환자를 일단 데려오라"는 원장님 한 분을 극적으로 섭외했다. 진료 시작 전이지만 상황이 급하니 먼저 봐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시각이 8시 20분이었다.


드라이브스루에서 갓 받아든 커피는 이미 뒷전이었다.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지만 커피가 식어가는 게 대수랴. 부랴부랴 병원으로 차를 돌려 환자를 태우고 비뇨의학과 의원으로 쐈다.


백미러로 슬쩍 본 뒷자리의 환자는 의외로 평온했다. 본인의 돌발 행동 때문에 누군가의 평화로운 아침이 산산조각 났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듯한 그 얼굴. 이 사람은 알까? 자기가 홧김에 뺀 소변줄 때문에 내가 이른 아침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정했는지. 피가 낭자했다더니 혈색 하나는 좋아 보여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얄밉다 해야 할지 모를 묘한 기분이 차 안을 채웠다.


검사 결과 요도에 상처는 났지만 다행히 큰 수술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안도감이 밀려오는 것과 동시에 참아왔던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역시 병원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기묘한 공간이다.


환자를 다시 병동에 인계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이미 병원은 '7병동 소변줄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책상 위에 놓인 종이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아침의 그 향긋함은 사라지고, 오직 씁쓸하고 차가운 액체만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내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할 거라 믿었던 모닝커피는 그렇게 식어버린 채로 끝이 났다. 이날 나의 에너지도 모두 소진되었다.



차트에는 기록되지 않는 병원의 생존 법칙.

소변줄 만큼이나 끈끈한 인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