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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Oct 20. 2021

그 당시 SNS가 있었다면

얼마 전에 큰 아이가 처음으로 책을 만들었다. 종이를 스태플러로 찍어서 그 안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채워서 만든 책. 그 전에도 책이라고 만들어 온 것들이 있었으나 연필로만 끄적끄적 하는 수준이었다면, 이번엔 글씨도 진하게 쓰고 그림에 색칠까지 해서 구색을 제법 갖춘 책이었다.


사실 아이 반에서는 요즘 책 만들기가 유행이다. 한 친구가 작년부터 만든 책이 한 스무 권 쯤 된다나?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책을 만들고 서로 교환해서 읽고 있다. 우리 아이도 그 영향으로 책을 만들어서 이제 한 5권 쯤 만들었다.  


남들 다 하는 거 한다고 해도, 어쨌든 아이가 그 좋아하던 TV도 마다하고 책을 쓰고 그리는 모습을 보니 기특했다. 책 속의 주인공도 유행하는 만화 캐릭터가 아니라, 본인이 만든 캐릭터라고 하니 더 칭찬할 만했다.

'이런 건 자랑 좀 해줘야지.'

나는 아이 책을 찍어서 SNS에 올렸다.




내가 초등학교 때 처음 만든 책이 생각났다.

나도 종이를 스태플러로 붙여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제목은 '꼬마 수다쟁이'.

단편 동화 한 편을 쓰긴 썼는데, 뒤에 종이가 많이 남았다. 책인데 빈 칸으로 남겨놓기는 허전하여 좋아하는 책을 필사하여 채워 넣었다.


책을 만들었다고 엄마에게 보여주니 엄마는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다. 마침 집에 놀러 온 동네 아줌마들에게 딸이 책을 만들었다고 자랑하셨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일단은 내가 만든 책이 완벽하지 않은데 가족 아닌 다른 사람이 읽는 게 부끄러웠다.

게다가 그 책은 온전히 내 책이 아니었다. 차라리 '꼬마 수다쟁이'만 쓰고 뒤를 공백으로 남겨놨으면 마음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을 텐데 하필 다른 작품을 채워 넣고 말았다.

"꼬마 수다쟁이만 제가 쓴 거예요. 뒤에는 제가 쓴 거 아니에요. 그냥 좋아하는 동화 쓴 거예요."

라고 해명하였으나, 엄마와 아줌마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자꾸 칭찬만 하셨다.

나는 꼭 도둑이 된 것 같았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혼자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당시 난 자신감이 없고 소심하여 엄마가 내 자랑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내가 아이를 키우고 보니 그런 소소한 자랑거리들이 육아의 기쁨인 것을.

아이의 첫 걸음, 첫 단어, 첫 편지 등이 다 기특하다.

처음만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평상시의 재미있는 말, 엉뚱한 행동, 태권도 품새, 피아노 연주, 미술 작품. 모든 게 소중하고 신기하다.

그래서 나는 SNS에 아이들의 일상을 종종 올리곤 한다.

(다행히 아이들은 어릴 적 나와는 다르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당당히 올려 달라고 한다.)


내가 자랄 당시에도 SNS가 있었다면?

아마 우리 엄마도 SNS에 많은 기록을 남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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