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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pr 08. 2022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쓰는 글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대한 이야기

*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결말에 대한 개인적 느낌입니다. (스포 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결말을 보고 나는 정신적 타격을 입었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리라. 명작이 될 뻔한 망작이 됐다. 용두사미란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쓴 맛을 다신다.



애정을 가지고 1화부터 14화까지 두 번씩 봤던 드라마다. 나희도(김태리 분), 백이진(남주혁 분), 고유림, 지승완, 문지웅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인물이 없다. 특색 있고 개성 있지만 현실 세계에 어딘가 있을 법한 인물들이다. 시대적 배경부터 소품까지 고증이 참 잘 되어 있어서 더 공감이 됐다. PC통신 화면부터 벽돌 핸드폰까지 '세심하게 신경 많이 썼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2000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시커먼 벽돌 핸드폰을 쓰는 주인공들을 보며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닌데, 저땐 이미 TTL 광고와 함께 경량화된 핸드폰이 나왔는데. 그러나 난 저들이 이전부터 썼던 시커먼 핸드폰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계속 써서라고 믿었다. 우리 세심한 제작진이 그런 걸 신경쓰지 않았을 리가 없어.

1999~2000년 대유행한 광고 SKT TTL (이미지 출처: Brand Brief)


백이진이 뉴욕으로 급하게 출장을 갈 때도 이해해 주려 했다. 입사 3년 차밖에 안 됐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했으니까, 백이진은 딸린 식구도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그 출장이 장기 출장이 되더니 그대로 뉴욕 특파원이 된다고? 사회부로 옮긴 지도 얼마 안 된 사람이? 에이 진짜! 뉴욕이 아무리 테러당하고 불안정하고 아수라장이어도 뉴욕은 뉴욕인데! 뉴욕 주재 근무는 직장 내 성공 코스 아니던가! 아니, 그 방송국엔 기자가 백이진 한 명인가? UBS의 히어로 백이진. 내가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이 도시 전체 다 구하는 건 이해하겠단 말이야. 그건 영웅물이니까. 그러나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러면 안 됐다. 그저 나희도와 백이진 둘을 헤어지게 하기 위해 여태 탄탄하게 쌓아놓은 서사며 개연성을 이렇게 말아먹으면 안 되지.



마지막으로 납득이 안 됐던 건 나희도의 결혼과 출산 시점이다. 그래, 뭐 첫사랑과 안 이루어질 수도 있지. 첫사랑에 실패하고 딴 사람과 급하게 결혼할 수도 있다 쳐. 그런데 현역 운동선수면 결혼 시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할 텐데 그런 과정이 전혀 그려지지 않은 게 의아했다.


특히! 나희도의 딸 김민채가 현재 중학생이므로 2007~2008년도에 나희도가 출산했다는 건데, 2009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경쟁자 고유림이 없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수월했다고? 딴 선수들은 노냐? 신예 선수들이 얼마나 팍팍 치고 올라오는데.


게다가 나희도가 출산 후에도 여전히 금메달을 딴 것은 엄청난 일이나, 그런 배경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평행대회에서 슬로베니아 글로리아 코트니크 선수가 출산 후 복귀하여 동메달을 따서 화제가 됐다. 박재민 해설위원이 경기 중계에서 했던 "대한민국의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를 출산하면서, 경력 단절 또는 내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 시작하셔도 됩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은퇴 후 돌아와서 올림픽이라고 하는 이 무대에서 본인 커리어 최고 무대를 10대, 20대도 아닌 지금 2022년에 만들어 냈습니다."까진 못 했더라도 백이진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출산 후 금메달이라는 언급은 있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늦었지만 결혼 축하합니다."라는 발언은 정말 황당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매번 이기는 것도 재미가 없다며 은퇴를 하는 것도 의아하다. 은퇴를 고려했다면 출산 시점에 고려했어야 맞다고 본다. (그나저나 메달 따며 이기는 게 육아보단 재미있을 텐데?)  



아쉽기 짝이 없는 15, 16화에도 보석 같은 장면은 있기에 한 번 더 보고 싶지만 차마 마주하지를 못하겠다. 믿었던 지인에게 사기당한 기분, 사랑하던 애인한테 배신당한 기분까지 든다.



혹시나 작가나 감독, 제작진이 '이래서 한국 시청자는 안 돼.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꼭 이루어져야 하나?'라고 생각할까 봐 약이 오른다. 아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갑자기 떨어진 개연성 때문에 화가 나는 거다.


영화 <라라랜드>의 주인공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영화의 사건과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가면 납득이 됐다. 아련하고 마음이 아파도 이해가 됐다. 그런데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이별은 의문만 남겼다.

"저렇게 애절한데 왜 헤어지는 거야?" 물음표 가득한 이별 장면이었다.


쐐기를 박은 이별 복기 장면. 그렇게 이별하면 안 됐다며 다른 식으로 이별을 고하는 상상 속 장면(다이어리 내용)은 오글거림 한도치에 도달했다. 하아! 연기를 잘 해낸 김태리와 남주혁한테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어차피 드라마는 끝났고 내 맘에 안 들면 안 드는 대로 그냥 흘려버려야지, 생각하고 참았다. 그래도 애정을 갖고 본 드라마인데 결말이 맘에 안 든다고 악플러로 돌아서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 표현하지 않고 넘어가기엔 서운해도 너무 서운하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결말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을 참고 다른 글을 쓰겠답시고 쓴 게 김초엽 작가의 <모레모사> 리뷰였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듯이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대한 분노를 엉뚱한 데서 표출하였음을 고백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후로 무얼 봐도 즐겁지가 않다. 책도, 드라마도, 영화도 땡기지 않는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내 문화생활을 되찾기 위해 이 글로 내 마음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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