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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pr 19. 2022

남편을 대가로 만들긴 틀렸어

<방구석 미술관 2>를 읽고

<방구석 미술관 2>는 20세기 한국 미술의 거장들과 그들의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쓴 책이다. <방구석 미술관 1>을 이틀 만에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2권도 구입했다.



<방구석 미술관 2>에는 '원조 사랑꾼 소의 화가' 이중섭,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한국 최초의 월드 아티스트' 이응노, '추상미술의 선구자 사업천재' 유영국, '심플을 추구한 반 고흐급 외골수' 장욱진,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김환기, '서민을 친근하게' 박수근, '독보적 여인상을 그린 화가' 천경자,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돌조각을 예술로 모노파 대표 미술가' 이우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을 거친 척박한 시대에 상기 화가들은 한국다움, '조선의 미'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 민족성을 담은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화가들은 먹고살기도 힘든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린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고 자신도 사업 수완이 있던 유영국과 거상 재벌 집안에서 태어난 백남준을 제외하고 다들 가정환경이 어려웠다.)


먹고살기 힘든 환경에서 남자 화가들이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배우자의 공이 컸다. (여자 화가들은 어찌 어찌 자기네가 벌어서 작품 활동을 한다. 아, 나혜석은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도저히 안 돼서 과거 내연남이었던 최린에게 합의금을 받아서 여생을 생활하긴 하지만.) 장욱진에게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서점(동양서림)을 차린 아내가 있었고, 김환기에게도 묵묵히 생계를 책임진 아내 김향안이 있었다.


1960년, 교수 생활 6년 만에 욱진은 교수직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취화선의 삶을 살기로 합니다. 재물, 성공, 명성, 명예 등 모든 속세의 욕망을 비우기로 합니다. 오직 그림과 술만을 취하는 '심플'한 신선의 삶을 살기로 합니다.
- p. 196

아내는 그의 시도 때도 없는 주벽에 괴롭기도 했지만, 그가 그림 외길을 올곧게 걸어가는 모습을 좋아했고 지지했습니다. 자녀들도 그런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죠.
- p. 209
뜨거운 낭만주의자인 환기는 '나는 그림 그리고, 너는 글 쓰며' 행복하게 살자고 말했지만,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던 향안은 그림과 글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 '생계를 유지할 일'을 찾자고 조언합니다.
- p. 240

백자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해버린 환기. 마음이 가는 것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100% 정열을 쏟아붓는 기질의 소유자 환기는 백자를 닥치는 대로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중략)
세 딸과 시어머니의 생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던 향안, 그녀라고 남편의 수집열이 위험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향안은 그것이 환기가 '조선의 미'를 탐구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임을 이해하고 있었죠.
- p. 240~241


아내는 남편을 대가로 만들기 위해 예술가 남편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생계까지 전적으로 책임져야 했나 보다. 이들의 아내가 이들을 대가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대가가 되기까지 배우자의 공이 컸음은 인정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이들이 자유로이, 전적으로 예술 활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아이 육아와 부모 봉양 등의 일도 아마 대가의 배우자들이 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을 읽으면서 컴퓨터 앞에 망부석처럼 앉아 있는 내 남편을 떠올린다. 그는 아침 일찍 나가서 밤에 들어오는데도 밤에 집에 오자마자 다시 컴퓨터를 켜고 새벽까지 일을 한다. 주말에도 이틀 내내 컴퓨터 앞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다. 내가 음식을 할 때도, 내가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할 때도,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나갈 때도 그의 집중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남편이 "설거지 내가 할게 둬."라고 말해 놓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언제 설거지가 될지 알 수 없다. 내가 못 참고 물소리를 콸콸 내며 접시를 캉캉대며 설거지를 해도 그는 모른다. 뒤늦게 "내가 한다니까 언제 했어?"라고 묻거나 설거지가 되어 있는지조차 자각을 못해서 "자기가 안 해서 내가 했다!"라고 인내심이 부족한 내가 실토한 적도 많다. (그러나 요새는 남편이 하기로 했으면 기다린다. 그가 잊은 것 같으면 다시 상기해 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너그러운 아내가 아니다. 맞벌이 부부면 함께 집안일을 나눠 해야 한다는 강한 뿌리를 도저히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 균형이 맞춰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남편에게 화를 낸다. (지금은 휴직 중이라 화를 덜 낸다고 한다..ㅋㅋ) 주말 이틀 중 하루를 내가 온전히 애들을 데리고 몇 시간 외출했으면 나머지 하루는 남편이 동네라도 데리고 나가주길 바란다. 컴퓨터로 일을 하면서도 나나 아이들이 뭔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집중을 깨고 재깍 도와주길 바란다.


남편은 일과 가정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만족이 안 될 때가 많다. 망부석 남편에게 내가 물었다.

"그쪽 업계에서 한 획을 그으려고 그러는 거야? 후세에 널리 이름을 남기려고?"

"아니야! 살아남으려고 그래."


남편의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짠해진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는 어차피 대가가 되긴 어려워 보이고 우리 둘 중에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그나마 남편이 대가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나는 내 남편을 대가로 만들긴 틀려 먹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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