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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pr 20. 2022

날 위한 한 끼

오늘은 오랜만에 여유로운 오전을 맞이했다.


지난주는 맹장염 수술을 한 여파로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화요일에 퇴원하고 목요일까지 많이 힘들었는데 금요일부터는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었다. 수술 후유증이 극복되나 했더니 이번엔 어금니에 때웠던 금니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20년을 꾸역꾸역 잘도 붙어 있었는데 금니에게도 내 휴직 소식이 전해졌나 보다. 병원 릴레이 행이다. 한동안은 치료가 좀 필요할 듯하다.


어쨌든 오래간만에 아프지 않고,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날을 맞이한 기념으로 동네를 걸었다. 가까우면서도 은근히 멀어서 잘 가지 않던 산길을 걸었다. 나무 데크로 쭉 연결되어 있어 걷기 좋은 곳이다. 그곳을 걸은 이유는, 사실 산책에 이유가 있겠냐만은, 글감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산은 산이요, 나무는 나무로다. 

아직 벌레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산책하기 좋다.

아, 참 좋은 계절이다! (감상은 딱 여기까지~)

걷고 걸어도 글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오라는 영감님은 안 오시고 허기가 찾아온다.


산을 내려가서 유명한 빵집을 찾아간다. 네이버 지도로 검색하니 3분 거리다. 걸어도, 걸어도 빵집이 보이지 않는다. 아, 자세히 보니 차량 이동 시 3분이었네! 도보 이동으로 변경하니 12분 거리였다. 걷고 또 걸으니 덥다. 이런 날씨엔 비빔국수가 딱일 것 같다.


빵을 사면서 근처에 비빔국수 파는 곳이 있는지 검색했다. 이 근처에도 없고 집 근처에도 없다. 나는 사실 평소에 먹고 싶은 게 별로 없는 사람인데 오늘따라 비빔국수 생각이 간절하다.


'내가 해 먹지 뭐!'

나 혼자만을 위해 요리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오늘은 해보기로 한다. 얼마 전 유튜브 '공부왕 찐천재' 채널에 나온 홍진경 표 비빔국수 레시피대로 해보기로 한다.


<홍진경 표 비빔국수 만드는 법>

  1. 잘 익은 배추김치를 썬다.  

  2. 잘 익은 총각김치도 썬다.

  3. 간장 적당히, 참기름 적당히, 설탕 적당히, 참깨 적당히, 김치 국물 적당히 넣는다.

  4. 소면을 삶아서 물로 꽉 짠 다음 양념에 비빈다.

 포인트는 총각김치 무를 썰어줌으로써 아삭한 식감을 살린다는 것이며, 고추장이나 식초는 안 넣는다.


홍진경네 비빔국수 (출처: 공부왕 찐천재)


김치만 맛있다면 맛없을 리 없는, 철저히 김치 의존적 레시피다. 다행히 맛있는 시어머니표 배추김치와 총각무 김치가 있다. 비닐 장갑을 끼고 김치를 쫑쫑 썰고 양념을 만들고 소면을 잘 삶은 다음 양념에 비볐다.


비주얼은 실패작, 맛은 성공작


와! 내가 만든 거 맞아?

많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아주 맛있는 비빔국수다.

요리똥손인 내가 계량도 없이 해내다니, 의외로 난 요리왕 찐천재인가?


맛있는 비빔국수를 먹고 나니 기분이 솔솔 좋아진다. 아이의 로드 매니저 일을 해야 하는 오후가 두렵지 않다. (학교에 데리러 가고 학원에 데려다주다 보면 마치 연예인의 로드 매니저가 된 기분이다. 아, 물론 차는 없는 뚜벅이 매니저다.) 이미 오전에 6천보를 걸은 상태지만 추가로 5천보를 걸을 힘이 솟는다!


왜 사람들이 먹고 싶은 음식에 집착하는지, 맛집에 줄을 서면서까지 꼭 먹고자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 혼자 산다'에서 연예인이 자기 혼자 먹겠다고 음식 하는 모습을 보면 '저거 다 설정이야.'라고 생각했는데, 방송용 설정이라 하더라도 때로는 자기 혼자만을 위한 요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날 위한 비빔국수 한 그릇이 나에게 건네는 응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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