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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pr 12. 2022

방구 로드

방구를 향한 멀고도 험난한 2박3일간의 여정

하루 이틀 속이 불편하고 배가 아팠다. 많이 심하진 않았다. 어릴 적부터 소화기가 약한 편이라 잘 체하기도 하고 잊을 만하면 장염이 찾아오기도 했다. 이번에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새벽 2시 반, 속이 쓰리고 장기를 쥐어짜는 고통에 잠이 깼다. 장염 약을 먹었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은 채 아침까지 지속되었다. 구토도 세 차례 했다. 분만을 앞둔 산모가 진통을 하듯 밤을 새웠다. 아침이 되니 극심한 진통이 가라앉아 잠을 청했다. 어느 정도 자고 나서 내과에 갔더니 맹장염으로 의심되니 큰 병원에 가보라 하였다.


맹장염은 아닌 것 같았다. 맹장은 오른쪽 다리를 못 펼 정도로 아프다고 했는데, 나는 오른쪽도 아프지만 중간 배도 아팠다. 그리고 극심한 고통이 사라져서 똑바로 걸을 수도 있었다.


주말이라 큰 병원 응급실에 갔다. 피검사, 소변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와 씨티를 찍었다. 응급실에서 진통제와 수액을 맞으니 통증도 완화되었다. 가져간 책도 읽고 핸드폰도 보면서 누워 있었다.


"맹장염 맞네요. 수술해야겠어요."


오 마이 맹장!


의사 선생님이 수술에 대해 설명하시며 수술 동의서를 받았다.

"전신마취를 하시고 복강경으로 수술하실 건데요."


복강경은 배에 구멍을 1~3개 뚫은 후 뱃속에 가스를 집어넣어 부풀린 다음 하는 수술이라고 한다. 개복수술보다 간단하고 흉터가 적어서 요즘엔 다 복강경으로 한다고. 뱃속에 가스를 집어넣으면 폐가 쪼그라들기 때문에 수술 후에 호흡이 불편하더라도 심호흡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심호흡? 아직 두 번밖에 못 갔지만 최근에 시작한 요가에서 수련한 복식호흡을 열심히 해주지, 라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 후에 불편하더라도 많이 걸어야 빨리 회복이 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걷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가만히 침대에만 있으면 오히려 힘들 텐데 설렁설렁 걷지 뭐.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비롯한 의학 드라마를 통해 맹장염 수술이 가장 기본적인 외과 수술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외과 수술 집도의 시작이 '아뻬' 아니던가! (맹장 'Appendix'를 'Appe'로 줄여 부름) 수술 시간도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1시간 이내라고 하였다.


'간단한 수술이야.' 나는 담대하고 자신만만하게 수술장에 들어갔다.

"마취약 들어갑니다. 호흡 크게 하세요."

그리고 정신이 깨자마자 내가 처음으로 했던 생각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였다. 어이없네! 처음 드는 생각이 가족 생각도 아니고 웬 '스물다섯 스물하나'람?




"수술 잘 끝났어요. 오늘은 잘 쉬시고요. 내일은 불편하시더라도 많이 걸으셔야 합니다. 안 그럼 장이 서로 붙어 버리는 장 유착이 생길 수 있어요."


내가 전신마취와 복강경을 과소평가했다. 엄청 아픈데? 간단한 수술이라는 건 집도하는 사람 입장에서였나 보다. 받는 사람 입장에선 안 간단한데?


갈비뼈와 겨드랑이, 어깨, 목 등이 너무 아팠다. 복강경 수술 시 복내에 이산화탄소를 빵빵하게 넣는데 그 가스가 위쪽으로 나가느라 아프다고 한다. 아파서 심호흡은커녕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수술 부위인 배도 아팠다. 뚫는 게 아픈지, 찢는 게 아픈지 배를 찢어본 경험이 없어서 비교는 못하겠는데 하여간 아팠다.  


"방구 나왔나요?"

간호사 선생님이 수시로 방귀가 나왔는지 체크했다. 방귀가 제대로 나와야 장 활동이 정상적으로 시작한 거라서 맹장염 수술의 핵심은 방귀다.


그야말로 위아래로 가스와의 전쟁이구만.


고통의 수술 첫날이 흐르고 둘째 날이 되었다.

"방구 나왔나요?"

간호사 선생님의 모닝 방구 인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가스 나왔나요?"

회진을 도는 의사 선생님도 예외 없이 묻는다.

"오늘부턴 흰 죽 드시고 병원 복도를 좀 많이 걸으세요."


아픈 배 때문에 똑바로 서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기 시작한다. 볼거리도 없는 그냥 병원 복도다. 애꿎은 다른 병실만 반복하여 들여다보게 된다.  


"자꾸 걸으셔야 방구가 나와요."

간호사 선생님들의 거침없는 '방구' 소리에 이젠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성인들 사이에서 '방구'란 말이 자유로이 통용되는 곳이 이곳이다. 원래 방구란 애들을 웃길 수 있는 치트키인데 여기선 아무도 웃지 않는구나.   


소화 활동이 원활하지 않아 밥도 잘 먹히지 않는다. 많이 먹진 못해도 일단 음식이 들어가니 속이 더부룩하고 배가 아프다. 나 역시 방구 생각이 간절하다.


셋째 날은 퇴원일이다.

의사 선생님이 가스 나왔는지 묻는다.

"나올 거 같은데 안 나오네요."

"혹시 장이 막힌 장폐색이 생겼는지 모르니 엑스레이를 한번 찍어 보죠."

퇴원하기 전에는 나와야 할 텐데 방구 이 녀석 감감무소식이다.


남편은 본인의 방구를 나눠주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방구도 기부가 되나요?)


그리고, 남편이 잠시 병실을 비운 사이 드디어...

기쁘다 방구 오셨네!


나는 남편과 간호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 아이들을 돌봐주신 친정 엄마와 옆에서 자상하게 날 도와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상황 파악을 잘하고 씩씩하게 있어준 아이들에게도..ㅎㅎ




방구의 표준어는 방귀지만 방구는 방구로 써야 제맛이죠!


상단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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