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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만 댓글

by JOO

작은 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브런치 글을 쓰다가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을 잊어버렸다. 어느새 학원 끝나는 시간에서 5분이 지났다. 혼이 빠진 와중에도 아이 간식거리를 챙겨서 미친 듯이 뛰어갔다. 아이는 왜 이리 늦게 데리러 왔냐고 눈을 흘긴다. 미안하다는데도 왜 늦었냐고 몇 번씩 묻는다.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작은 마들렌과 우유를 먹였다. 미술학원에 가려는데 아이의 마스크 줄이 끊어졌다. 부랴부랴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서 씌워 들여보냈다.


마트에 가서 저녁거리를 산다. 2천 원 할인 쿠폰이 있어 잊지 않고 내민다.

"이건 3만 원 이상 사야 쓰실 수 있는데요. 지금 26,830원이에요."

아아... 3,170원만 더 고르면 되는데 내 뒤로 줄은 엄청 길게 서 있다. 이 물건을 취소하고 3,170원을 추가로 담으러 갈 엄두가 안 난다. 쿠폰은 다음 기회에 쓰기로 하고 이번은 그냥 넘어간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난 후에 무거운 장바구니까지 들고 오니 지친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론 '아까 쓰다 만 글은 어떻게 이어 볼까? 소제목 없이 쭉 가는 게 좋을까, 중간중간 소제목을 붙이는 게 좋을까? 나한테만 재미있는 글일까, 다른 사람에게도 흥미가 있는 글이 될까?'란 생각을 한다.


장 본 것을 냉장고에 넣고 노트북 앞에 앉으니 내가 쓰다 만 댓글이 보인다. 아까 다급하게 뛰쳐나가던 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글이든 댓글이든 필(Feel) 받을 때 쭉 써야 하는데 맥이 끊기니 힘도 빠진다.


집엔 개켜야 하는 빨래가 산더미다. 저걸 외면하고 짬짬이 글을 쓰겠다며 노트북 앞에 매달렸지만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쓰다 만 댓글처럼 뭔가가 마무리되지 않은 하루였지만 재활용 쓰레기만은 잊지 않고 버렸다. 그거면 됐어. 나 자신을 칭찬해.


알람이 울린다. 아이 미술학원 끝날 시간이다. 이번엔 늦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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