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첫 CA(특별활동)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각자 원하는 CA부를 골라 해당하는 교실을 찾아갔다. 나는 현악부를 선택했다. 집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던 터라 현악부 활동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현악부 교실로 갔더니 학생들이 바이올린, 첼로 등 악기를 들고 온다. 분명 첫 시간인데 얘네들은 어떻게 악기를 다 챙겨 왔을까 의아했다. 아이들은 보면대를 펴서 악보를 올려놓고 각자 악기를 꺼낸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우두커니 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 수군댔다.
"쟤는 누구야? 여기 왜 왔어?"
교실로 들어오신 현악부 선생님께 특활로 왔다고 하니 선생님은 난감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작년에 현악부를 별도로 뽑은 애들로 쭉 가는 거라 특활부로 선택하면 안 되는데 담임 선생님이 말씀 안 해 주셨어?"
하는 수 없이 나의 원래 교실로 갔다. 그 교실은 한 특활부로 사용되고 있었고 그 특활부를 지도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나의 담임 선생님도 어떤 특활부를 지도하러 다른 교실로 갔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복도를 서성였다. 복도를 서성여도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 처음 닥쳐보는 상황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바로 학교로 와줬다. 엄마가 학교까지 오는 시간인 10여 분의 시간이 나에게는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현악부 교실로 가서 선생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바이올린을 배운 지 1년이 넘었고 어느 정도 실력이 되니 현악부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선생님도 현악부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였다. 현악부 입단보다도, 어디도 갈 곳이 없던 내가 그 교실에 들어가도 된다는 허락을 얻어 기뻤다.
나는 1 바이올린 파트에 배정되었다. 나는 바이올린 연주를 그리 잘하지 않는데 1 바이올린 파트에 배정된 게 부담스러웠다. '크시코스의 우편마차',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등 많은 어려운 곡을 연습했다. 완벽주의자였던 나는 내가 음을 정확하게 연주하지 못하고 뭉개서 연주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사실 합주라는 것이 누구 하나 안 해도 별로 티가 안 나고 조금 틀려도 크게 상관이 없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 내가 다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학교 현악부는 여기저기 연주를 하러 많이 다녔다. 나는 수업을 빠지고 연주를 하러 가는 것이 좋았다. 수업을 빠지는 것도 좋았고, 내가 반 애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현악부 활동은 힘들었지만 재미도 있었다. 그동안 보고 듣기만 했던 오케스트라 연주를 내가 현악부의 구성원이 되어 연주하는 것이 보람찼다.
1년 넘게 활동하면서 현악부 애들은 서로 친해졌겠지만, 5학년에 갑자기 들어간 나는 현악부에 아는 사람이 딱 한 명뿐이었다. 우리 반 친구 주이(가명)였다. 주이밖에 말을 걸 친구가 없어서 나는 주이 곁에 있으면서 주이와 주이의 친구들과 친해졌다. 여름에 현악부 수련회를 갈 때까지만 해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현악부 수련회는 어떤 수련원으로 갔던 것 같다. 낮에는 연습과 물놀이, 저녁에는 캠프파이어 등을 했던 것 같다. 사실 어디로 갔는지, 뭘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에게는 한 가지 생생한 사건만이 남아 있다. 밤에 현악부 애들은 한 공간에서 - 아마 강당 바닥이었던 것 같다. - 담요를 깔고 잤다. 나는 잠이 안 와서 그냥 누워 있었다. 내 등 뒤에서 애들이 소곤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주이와 친구들이었다.
"주O (내 이름) 너무 싫지 않냐?"
"어, 나도 너무 싫어. 왜 자꾸 나한테 말 걸어?"
그들은 내가 자는 줄 알고 나의 바로 옆에서 내 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자는 척하며 계속 누워 있어야 할지,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야! 너희 나 자는 줄 알았지?"
"아니? 너 깨어 있는 거 알고 말한 건데?"
그들은 몹시 당황한 눈치였지만 당당한 척하려고 했다.
나는 그들이 편하게 내 욕을 할 수 있도록 밖으로 나갔다. 홀로 운동장에 서있는 밤이 참 깜깜했다. 같은 반 친구가 있어 든든하고 좋았는데, 상대는 아니었구나. 나는 왜 상대가 날 싫어하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둔한가? 주이가 친하다고 생각하며 주이 곁에 있던 내가 바보 같았다. 외롭고 쓸쓸한 밤이었다.
여름 수련회 이후 나는 주이 곁에 가지 않았다. 주이뿐 아니라 현악부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연습과 연주만 하며 2학기를 버텼다. 그리고 5학년이 끝날 때 엄마는 다시 학교로 오셔서 현악부 선생님께 현악부를 관두겠다고 얘기하셨다. 5학년이면 초등 고학년이라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현악부의 시작과 끝엔 엄마의 도움이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그렇게 현악부 활동은 내게 상처를 남기고 끝났다. 남아 있던 현악부 학생들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들어오면 안 되는 공간에 극성맞게 들어왔다가 1년 만에 극성맞게 나간 애로 기억되다가 서서히 잊히지 않았을까.